길위의단상

이게 누구로

샌. 2015. 12. 5. 14:00

얼마 전 김영삼 전 대통령이 타계했을 때 그분의 어록이 한동안 회자되었다. "닭 모가지를 비틀어도 새벽은 온다" 같은 명언도 있지만, 국민을 즐겁게 해 준 건 대통령을 대상으로 한 유머들이었다. 사투리 발음부터 직설적이면서 좀 모자라 보이는 말들이 화제에 올랐다. 그런 점이 오히려 인간적으로 다가왔다.

 

그중 하나에 클린턴 대통령을 만났을 때 일화가 있다. 인사를 하며 "하우 아 유"라고 해야 하는데 순간적으로 "후 아 유"라고 했단다. 당신 누구냐고 물었으니 황당할 수밖에. 나중에 YS의 변명이 걸작이었다. 경상도에서는 반가운 사람과 만날 때 첫 인사가 "이게 누꼬"라고 하는데 영어로 "후 아 유"가 아니냐는 것이었다.

 

내 고향 말투로는 "이게 누구로"다. 반가운 사람과 만날 때 무의식적으로 터져 나오는 말이다. 경상도 사람이라면 이 말이 얼마만 한 반가움의 표시인지 잘 알 것이다. '이'에 강세를 넣으면 더 맛이 산다. 그러나 인사말치고는 좀 격하다.

 

요사이 내가 이 말을 자주 쓰고 있다. 손주와 만날 때다. 손주 얼굴을 보면 "이게 누구로"라는 사투리가 저절로 터져 나온다. 그것도 큰 목소리로 여러 차례. 손주는 이상한 말투에 어리둥절해 한다. 아내는 그게 무슨 소리냐며 좀 더 다정하게 대하라고 한다. 아마 딸도 잘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이게 누구로"는 내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환영 표현이다.

 

손주는 이제 막 두 발로 걷기 시작했다. 양팔을 벌리고 반기면 방긋 웃으며 아장아장 걸어와 안긴다. 내 품에 안긴 이 작은 존재는 누구인가? 손주의 모습으로 옆에 있지만 이 귀한 생명은 어디서 왔는가? 그래서 묻지 않을 수 없다. 여린 생명에 대한 신비와 경탄이 들어 있는 질문, "이게 누구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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