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고본느낌

브레히트는 이렇게 말했다

샌. 2015. 11. 28. 11:19

브레히트(Bertolt Brecht, 1898~1956)의 글은 묵직하다. 짧은 문장이라도 둔중한 펀치를 맞은 듯 울림이 있다. 하나를 오래 붙잡고 천착하기도 한다. 그동안은 짧은 경구나 몇 편의 시로밖에 만나지 못했지만 세상과 인간에 대한 통찰을 읽을 수 있었다. 예언자는 그 시대에 불편한 외침이 되어야 한다. 탄광 속 카나리아처럼 위기가 닥치기 전에 경고음을 보내야 한다. 이 둘 모두에 해당하는 브레히트는 예언자라 불러 마땅하다.

 

<브레히트는 이렇게 말했다>는 베르톨트 브레히트 전집에서 발췌한 글 모음집이다. 사랑, 정치, 예술, 자본, 삶의 지혜, 혁명 등 여섯 주제로 나누어 묶어져 있다. 부담 없이 읽으면서 그의 사상을 이해하는 데 작으나마 도움이 되는 책이다. 그중에서 눈에 띄는 몇 가지를 골라보다.

 

사랑

 

사랑이란 게 뭡니까? 왜 인간은 사랑을 하는 걸까요?

어떤 사람은 한 사람을 만나고

그를 사랑합니다. 또 어떤 사람은 사랑하길 원해서

맞는 사람을 찾습니다.

이렇듯 어떤 이는 한 사람을 사랑하고 어떤 이는

사랑하는 것을 사랑합니다. 나는 전자를 숙명이라 부르겠습니다.

뒤의 것은 욕정이지요.

 

사랑해서 한 일은 창피할 게 없다.

 

내가 좋아하는 것들 -

아침에 창을 열고 밖을 내다보는 첫 눈길

다시 찾은 옛날 책

감격에 겨운 얼굴들

눈, 바뀌는 계절

신문

변증법

샤워, 수영

옛 음악

편한 신발

이해하기

글쓰기, 풀 심기

여행하기

노래하기

친절하기

 

내게 푸른 하늘과 한 줌의 곡식과 여인의 부드러운 팔과 가고 싶은 곳 어디로나 갈 수 있는 자유를 주시오. 그게 영혼의 안식이라오.

 

정치

 

이 모든 일이 왜 일어났는지, 그 원인을 찾는 역사학자는 숙명론자가 된다.

 

이런 사람들이 있다. 다른 사람들이 뭘 느끼는지 전혀 감정이입을 하지 못하고, 팩트를 무시하고, 주위 환경과 상황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 자기만의 생각을 말하는 사람들, 그런 사람들은 소위 '지도자'로 타고난 사람들이다.

 

정치는 일반적인 사업과 닮은 꼴이다. 작은 빚은 권장할 만하지 않다. 그러나 커다란 빚이면 얘기가 달라진다. 정말 커다란 빚을 지고 있는 사람은 존경을 받는다. 그의 빚을 걱정해서 떨고 있는 사람은 그가 아니라 채권자들이다. 그가 빚을 갚도록 하기 위해서는 그에게 더 커다란 사업을 몰아줘야 한다. 또 그의 기분이 상하지 않게 해줘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그가 절망해서, '너 죽고 나 죽자'는 식으로 다 끌고 들어갈지 모르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를 혼자 내버려둬서는 안 되며 계속 만나줘야 한다. 왜냐하면 그에게 늘 경고를 해야 하기 때문이다. 간단히 말하자면, 그는 하나의 권력이다.

 

유권자들에게 그들이 어떤 상황에 처해 있는지 알지 못하게 함으로써 자유롭게 자신들의 부자유를 선택하게 만드는 것은 부르주아지들의 오래된 속임수다. 자신의 길을 선택하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지식이다. 악보를 읽는 법도, 피아노를 치는 법도 배울 수 없었던 사람에게 아무 건반이나 두드려보라는 선택의 자유를 주면 어떤 결과가 나오겠는가?

 

인간은 정치적으로 영양과다 상태가 아니라 영양실조 상태다. 왜냐하면 제대로 된 음식은 없고 대체 식품만 있기 때문이다.

 

정치야 어찌 됐건 궁극적으로는 결국 무기가 결정을 내린다. 정치가들이 아니라 장군들이 결정하게 될 것이다.

 

일반적으로 우리 같은 서민들에겐 승리고 패배고 다 혹독한 대가를 요구해. 가장 최선은 정치가 아무 일도 하지 않고 제자리에 머물러 있는 거지.

 

칼로만 민중을 착취할 수 있는 게 아니다. 거기 필요한 것은 도덕이다. 도덕은 칼에 칠하는 일종의 기름이다. 그렇지 않으면 칼에 녹이 슨다.

 

폐허가 된 도시들을 보고 대단한 충격을 받을 거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나는 이미 폐인이 된 인간들의 모습을 보았기 때문이다.

 

예술

 

연극은 '관객을 얼마나 만족시키는가'가 아니라, '관객을 얼마나 변화시키는가'라는 기준으로 평가해야 한다.

 

암울한 시대에도 노래를 부를 것인가?

그래도 노래를 부를 것이다.

암울한 시대에 대해.

 

모든 예술은 예술 중의 가장 위대한 예술, 삶의 예술에 봉사한다.

 

시는 '아름답게 들리는구나' 하고 감탄만 하고 끝인 카나리아의 노랫소리와는 좀 다르다. 시에서 우리는 살짝 시간을 들여 머물러야 하고 때로는 거기서 무엇이 아름다운지 찾아내야만 한다.

 

이렇게 말하지는 않으리라, 원래 암울한 시대였다

그보다.... 그럼 너희의 시인들은 왜 거기에 침묵하고 있었느냐?

 

진정한 예술은 대중과 함께 빈곤해지고 대중과 함께 부유해진다.

 

자본

 

상품이 넘지 못할 국경선이 있다면 군대가 넘게 될 것이다.

 

전쟁은 계속 있을 것이다. 거기서 돈을 벌 수 있는 마지막 한 사람이 남아 있는 한.

 

한 여자와 결혼하는 이유가 그녀의 돈 때문인지 혹은 그녀 때문인지 질문하는 것은 완전히 잘못되었다. 대개 그 둘은 하나다. 여자가 남자를 성적으로 흥분시키는 것 중에는 여자의 돈만 한 게 없다.

 

우리는 살기 위해서 먹어야 한다. 그러나 먹었다고 해서 산 것은 아니다. 본래 인간 행위의 동기는 자신을 표현하려는 욕구다. 다시 말해서 자신의 개성을 영속화하려는 욕구다. 그게 무엇을 통해서 어떤 식으로 이루어질지는 매우 부차적인 문제다. 타고난 기수는 말을 잘 달리게 함으로써 자신을 표현한다. 그 말이 그의 소유인지 아닌지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 단지 그는 말을 탈 뿐이다. 또 어떤 사람을 책상을 만들려고 한다. 좋아하는 나무를 손에 넣고 연장을 챙겨 들고 방에 들어앉을 수 있다면 그는 행복하다. 이것이 경제가 가진 비밀의 전부다. 다른 무엇을 위해서가 아니라 오직 돈을 벌기 위해 그 일을 하는 사람은 돈을 번다고 해도 가난한 사람이다. 그에겐 근본적인 것이 결여되어 있다. 그의 존재는 아무 것도 아니고 따라서 아무 것도 해내지 못할 것이다.

 

일단 먹는 게 먼저고 도덕은 그 다음이다.

 

자유의지, 그것은 자본주의가 지어낸 말이다.

 

대체 인간이란 무엇인가?

난 인간이 무엇인지 알까?

그걸 누가 알고 있는지 나는 알까?

나는 모른다. 인간이 무엇인지.

나는 오직 그의 가격만 알 뿐.

 

삶의 지혜

 

그저 잠깐 살다 가기 때문에

이 땅 위에서의 행복은 인간의 권리다.

 

설명이란 대부분 변명이다.

 

우리가 늘 진실을 안다고 하면 거기서 얼마나 많은 추악함을 보게 될까.

 

이 세상에 이성을 가진 존재가 살아 있는 한 문제는 늘 이것일 뿐이다. 누가 누구를 먹느냐?

 

자연을 정복하면서 놀랄 만큼 거대해진 인간은, 인간을 정복함으로써 거대한 괴물이 된다.

 

인간은 맘만 먹으면 자신을 무감각하게 만들 수 있는 끔찍한 능력을 가지고 있다. 길모퉁이에서 팔 하나가 없는 사람을 처음 맞닥뜨렸을 때는 놀라서 10페니히를 줄 마음이 생기겠지만 두 번째에는 냉정하게 그를 경찰에 넘긴다.

 

농부의 머리가 나쁘면 나쁠수록 그의 소들은 강한 근육을 가져야만 한다.

 

폭풍은 가장 낮은 풀을 내버려둔다.

아침 녘이 되면

풀은 다시 일어난다.

 

종교는 기댈 수 있는 발판을 제공한다. 그러나 말안장이 기수에게 안정감을 제공한다고 해서 그게 말에게도 좋다고 말할 수는 없는 일이다.

 

진실을 모르는 자는 한낱 바보일 뿐이다. 그러나 진실을 알면서 그것을 거짓이라고 말하는 자는 범죄자다.

 

인류의 절반은 오직 다른 절반의 기억력이 구멍투성이인 덕에 살아간다.

 

행복은 어둡고 빨리 지나간다. 불행은 길고 밝다.

 

대부분 우리의 경험은 순식간에 판단으로 변한다. 우리는 이 판단을 기억해두고는 그걸 경험이라고 생각한다.

 

물결을 거슬러 헤엄치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다. 그러나 물결의 방향을 아는 것은 현명한 일이다.

 

사람들은 죽음의 공포라는 것을 잘못 생각하고 있다. 만일 내가 죽는다면? 우리는 전전긍긍하면서 아쉬워한다. 이런 것도 누려보지 못했고 저런 것도 해보지 못해고..... 이때 우리는 우리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는 걸 잊고 있다.

 

송아지들은 어기적거리며 북소리를 뒤따른다. 그 북의 피막도 송아지들이 댄다.

 

겪었던 고난에 대한 인간들의 기억력은 놀랄 정도로 짧다. 닥쳐올 고난에 대한 그들의 상상력은 더 빈약하다.

 

진실은 그것을 이해할 수 있는 사람들에게만 알려야 한다. 누구나 진실이 무기라는 것을 알고 있지만, 아무한테나 무기가 되지는 않는다.

 

혁명

 

자신을 변화시킨다는 것은 인간의 즐거움이다.

 

옛것과 새것의 싸움을 서술하지만 말고 새것을 위해 싸워라.

 

불의는 인간적이다. 그러나 더 인간적인 것은 불의에 맞서 싸우는 것이다.

 

불의를 저지르는 것이 옳지 않다고 강조하는 일보다 더 중요한 것은 불의를 묵과하는 것이 옳지 않다고 강조하는 일이다. 불의를 저지를 수 있는 사람은 적지만 불의를 묵과할 수 있는 사람은 많다.

 

변혁은 막다른 골목에서 일어난다.

 

나는 도와주려는 마음만 생기고 분노로 변하지 않는 연민을 무가치하게 생각한다.

 

나는 학문의 유일한 목표가 인간이 살면서 겪는 노고를 덜어주는 데 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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