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고본느낌

인간이 그리는 무늬

샌. 2016. 11. 17. 17:21

최진선 선생이 강의 형식으로 인문학을 설명하는 책이다. 제목인 '인간이 그리는 무늬'는 '인문(人文)'을 글자 그대로 옮긴 말이다. 지금 우리 사회를 휩쓰는 인문학 열풍을 선생은 긍정적으로 보고 있다. 어느 사회나 초기 단계에서는 정치학과 법학이 중심 기능을 하고, 사회가 좀 발전하면 경제학, 사회학 등이 주도적인 기능을 한다. 사회가 좀 더 발전하면 철학이나 심리학 같은 인문학이 중심 학문으로 등장한다. 그러므로 우리 사회의 인문학 바람은 세계 속에서 한국의 진정한 정체성과 독립성을 확보하고 성장하기 위한 열망으로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선생은 인문학의 목적이 인문적 통찰력을 기르는 것이라고 말한다. 우리가 어떤 현상을 접하고 '좋다'거나 '나쁘다'라는 판단을 한다면 인문 정신과는 동떨어진 정치적 판단이라는 말이 인상적이었다. 자기 머릿속에 있던, 자기가 믿고 있던, 신념, 이념, 가치관을 따라서 세상을 해석한다는 것이다. 인문적 판단은 이런 정치적 판단과 결별하는 것이 첫째 조건이다. 인문적 판단을 하는 사람은 '좋다'거나 '나쁘다'라고 대답하지 않는다. 대신에 왜 그런 현상이 생기는지 질문을 한다. 질문에서 인문적 통찰이 시작된다.

 

미국 대통령으로 트럼프가 당선되었을 때 나에게 제일 먼저 든 생각이 '나쁘다'였다. 그런데 선생의 글을 읽고 보니 내 판단은 언론이 심어준 잣대에 따라 자동인형처럼 움직인 것에 불과했다. "미국에 어떤 변화가 생겼길래 트럼프 같은 사람이 당선되었지?"라는 의문은 가지지 못했다. 다른 사건을 바라보는 시각도 대동소이했다. 정치적 판단에만 익숙했던 나를 볼 수 있었다. 많이 반성한 대목이었다.

 

인문학을 공부한다는 건 단순히 지식을 쌓은 것이 아니다. 인문적 통찰력의 힘을 기르는 것이다. '향원(鄕原)'의 울타리를 벗어나는 일이다. 자기가 처해 있는 좁은 범위의 영역이 이 세계의 전부인 줄 알고, 거기서 만들어지는 논리와 가치관으로 자기 삶이나 타인의 삶이나 세계의 모든 일을 해석하는 사람이 '향원'이다.

 

선생은 이성보다는 욕망을 강조한다. 개인의 욕망에 충실하며 능동적 주체로 살아가야 한다고 말한다. 이념의 허울을 벗고 솔직한 자신에서 출발해야 한다. 자기를 위해서 사는 존재라야 비로소 세계를 책임질 수 있는 능력을 갖추게 된다. 그런 점에서 인문학은 집단이 아닌 개인의 소중함을 깨닫게 하는 학문이다.

 

능동적 주체로 살아가기 위해서는 자기 자신을 정직하게 대면해야 한다. 가장 효과적인 방법으로 선생은 세 가지를 추천한다. 첫째는 글쓰기다. 글을 쓴다는 것은 자기 자신을 표현하는 행위다. "글자는 영혼이 세상에 직접 강림하기 어려워 머릿속에서 몇 번 저마한 후, 팔뚝을 거쳐 팔목을 나고 흐르다가 하얀 종이 위에 떨어져 여러 가지 모양으로 응고된 것"이라는 말이 인상적이었다. 둘째는 운동, 셋째는 낭송이다. 글쓰기를 하고 자주 시간을 내어 낭송을 하며 항상 운동으로 자신을 단련하면서 사는 사람이 되라고 말한다.

 

인문학에 빠진다는 건 결국 바른 사람이 되기 위한 공부다. 이념이나 신념이나 가치관을 뚫고 이 세계에 자기 스스로 우뚝 서는 일이다. 즉, 자기가 자기로 존재하는 일이다. 그럴 때 '인간이 그리는 무늬'는 아름답게 빛난다. <인간이 그리는 무늬>는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지 되돌아보게 해 주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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