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고본느낌

끝없는 벌판

샌. 2017. 5. 6. 11:57

메콩 강에서 오리를 기르며 유랑하는 한 가족의 이야기다. 가출한 어머니 때문에 아버지는 집을 불태운 뒤 어린 남매를 데리고 배 한 척에 몸을 맡긴다. 상처투성이인 그가 제대로 된 아버지 노릇을 할 리가 없다. 남매는 벌거숭이인 채로 냉혹한 자연과 세상에 내던져진다. 책을 덮으니 가슴이 아리고 먹먹하다.

 

<끝없는 벌판>은 베트남 작가인 응웬욱뜨의 소설이다. 젊은 여성 작가인데 인간을 바라보는 시선이 따스하고 깊다. 적의보다는 인간에 대한 연민이 앞선다. 작가는 문학이 인간의 삶을 변화시킬 수 있다는 믿음으로 글을 쓰기 시작했다고 한다. 두 남매의 성장기를 통해 작가가 우리에게 말하려는 바가 무엇인지 알 것 같다. 베트남 소설은 처음 읽어 보지만 기대 이상의 감동을 받았다.

 

생명력이란 길 위의 질경이와 같다. 발바닥에 무수히 짓밟혀도 포기하지 않고 다시 고개를 든다. 그렇게 면면히 이어지면서 인간 역사를 만들어 간다. 생명이란 살아야 한다는 지상 명령이다. 고통을 감내할 수 있는 것은 그 바탕에는 진보에 대한 낙관이 있기 때문이다. 소설을 읽어 보니 베트남 문화에는 그런 문화적 토양이 풍성한 것 같다. 소설에서 고난을 감수하는 것이 주인공의 몸에 익은 습관이라고 했지만, 아마 베트남 민족도 그러하지 않나 싶다.

 

그렇지만 소설 마지막은 너무 슬프다. 아버지 앞에서 집단 윤간을 당한 주인공은 복수 대신 이런 다짐을 한다. "아빠 없는 아이지만 반드시 학교를 다니게 할 거야. 아이가 한평생 즐겁고 생기발랄하게 살 수 있도록 보살펴줘야지. 엄마의 가르침으로, 때때로 어른들의 잘못도 용서할 줄 아는, 속 깊은 아이로 키워볼 거야."

 

베트남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 중 하나가 수상가옥이다. 간난한 생을 이어가는 사람들의 모습에서 삶의 고통에 내재한 강인한 생명력을 읽는다. 황량한 '끝없는 벌판'은 어떤 면에서 건강한 생명력의 원천인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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