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속일상

부용 묘 가는 길

샌. 2011. 3. 24. 19:13


초봄의 햇살이 따스한 날, 부용의 묘를 찾아간다. 천안 광덕사(廣德寺)에서 오른쪽 산길로 접어들어 1 km 쯤 올라가면 부용의 묘가 있다. 김부용(金芙蓉)은 황진이, 이매창과 함께 조선 3대 명기(名妓)로 일컬어진다.

 


김부용(金芙蓉)은 1812년 평안도 성천에서 가난한 선비의 무남독녀로 태어났으나 어린 나이에 부모를 여의고 나서는 퇴기의 수양딸로 들어가 성천 고을의 관기가 된다. 워낙 시문에 뛰어나고 총명해 사또들의 사랑을 독차지한다. 부용의 나이 열아홉일 때 새로 부임한 사또는 자신의 스승인 평양감사 김이양(金履陽)에게 부용을 소개해 준다. 이때 김 대감의 나이는 77세였는데 부용은 노 대감의 신변을 돌봐드리라는 사또의 명령을 기쁜 마음으로 받아들인다. “아리따운 젊은 시인이 어찌 나 같은 노객을 상대할 수 있겠는가” 하며 손사래를 치는 김 대감에게 부용을 이렇게 말했다고 전한다.

 

“뜻이 같고 마음만 통한다면 연세가 무슨 상관이겠습니까. 세상에는 삼십 노인이 있는 반면 팔십 청춘도 있는 법입니다.”

김 대감은 총명하고 아름다운 부용을 끔찍이 사랑했다고 한다. 부용 역시 노 대감을 정성을 다해 모신다. 그러나 김 대감이 호조판서에 제수되어 다시 한양에 가야 할 때 대감은 부용을 기적에서 빼내 양인의 신분으로 만들고 정식으로 부실을 삼은 뒤 훗날을 기약한다. 생이별을 한 부용은 외롭고 그리운 나날을 보내지만 한양에서는 연락이 없다. 더 이상 참을 수 없는 지경에 이른 부용은 애절한 시를 써서 김 대감에게 보내니 바로 그 유명한 부용상사곡(芙蓉相思曲)이다.

 



路遠
信遲
念在彼
身留玆
紗巾有淚
雁書無期
香閣鍾鳴夜
鍊亭月上時
依孤枕驚殘夢
望歸雲遠離
日待佳期愁屈指
晨開情札泣支
容貌憔悴把鏡下淚
歌聲鳴咽對人含悲
銀刀斷弱腸非難事
珠履送遠眸更多疑
朝遠望暮遠望郎何無信
昨不來今不來妾獨見欺
浿江成平陸後鞭馬過否
長林變大海初乘船欲渡之
見時少別時多世情無人可測
好緣短惡緣長天意有誰能知
一片香雲楚臺夜神女之夢在某
數聲良甥柰樓月弄玉之情屬誰
欲忘難忘强登浮碧樓可惜紅顔老
不思自思乍倚牡丹峯每歎綠髮衰
獨宿空房下淚如雨三生佳約寧有變
孤處香閨頭雖欲雪百年貞心自不移
罷春夢開竹窓迎花柳少年總是無情客
推玉枕攬香衣送歌舞者莫非可憎兒
千里待人難待人難甚矣君子薄情豈如是
三時出門望出門望悲哉賤妾苦懷果何其
惟願寬仁大丈夫決意渡江舊緣燭下欣相對
勿使軟弱兒女子含淚歸泉哀魂月中泣相隨

 

헤어져
그립고
길은 멀고
소식 늦어
맘은 거기 있고
몸은 여기 있고
비단 수건은 눈물 젖고
비단 부채는 기약 없고
향각서 종소리 우는 이 밤
연광정에 달이 뜨는 이때
악몽에 놀라 외롭게 배게 껴안을 때
오는 구름을 보며 먼 이별 슬퍼하네
날마다 만날 날 그리며 근심스레 손꼽고
새벽엔 러브레터 펼쳐 보며 턱 괴고 우네
얼굴은 초췌해져 거울을 대하니 눈물이 주루룩
목소리는 울음 잠겨 사람을 대하니 슬픔 베문 듯
은장도를 들어 약한 창자 끊기는 어려운 일 아니도다
비단신을 끌며 먼 눈길 보내니 또 온갖 의심만 들끊고
어제도 안 오고 오늘도 안 오니 그대 어찌 그리 신의가 없죠
아침에도 멀리 보고 저녁에도 멀리 보니 나 혼자 보면서 속네
대동강이 평지 된 뒤에야 채찍 휘두르며 말을 타고 오시려는지요
큰 숲이 넓은 바다 변하면 그때야 배타고 건너오시려고 하는지요
떨어져 있는 때는 많고 만난 때는 적으니 사랑을 잴 사람 아무도 없네
나쁜 인연은 길고 좋은 인연을 짧으니 하늘의 뜻을 누가 알 수 있으리
운우의 정 나누던 무산에 오시는 발길 끊기니 선녀의 꿈은 어디에 있는지요
달빚 젖은 봉대에 피리소리 끊기니 옥을 희롱하던 마음은 누구에게 갔는지요
잊어버리자 잊을 수 없어 억지로 부벽루에 오르니 아깝도다 홍안은 늙어만 가고
생각말자 생각이 절로 나 몸을 모란봉에 의지하니 슬프도다 검은 머리 상했구료
홀로 지키는 빈방에 눈물이 비처럼 주룩주룩 흘러도 삼생의 가약 어찌 변할 수 있을까요
외로운 곳 쓸쓸한 안방 머리칼이 희긋희긋 해져도 백년의 정심 어찌 움직일 수 있을까요
낮잠에서 깨어나 사창을 열고 화류 소년을 맞아보아도 모두가 마음 없는 나그네 일 뿐이고요
옥베개 밀고 향기 나는 옷 끌며 봄날 어울려 춤도 추어 보았지만 모두가 미운 녀석들뿐이고요
천리 있는 사람 기다리기 어렵네 사람 기다리기 이리 어려워요 군자의 박정함이 어찌 이리 심한가요
삼시에 문밖에 나가 멀리 보네 문밖에 나가 바라보니까 슬퍼요 천첩의 괴로운 마음 과연 어떠할지요
오직 바라건대 너그럽고 인자한 대장부여 결심하고 강을 건너 옛 인연 촛불 기쁨으로 날 만나 주셔서
약한 여인이 슬픔을 머금은 채 저승에 돌아가 외로운 영혼 달 속에서 내내 울며 따라다니지 않도록 하소서

 


이 시기에 이런 일화도 전한다. 한양에서 예조참판 강순황이 평양에 와서 부용과 만난다. 두 사람은 밤이 늦도록 시로 화답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지만 부용은 이미 김 대감의 부실이니 헤어져야만 한다. 연모에 사로잡힌 강 참판은 부용을 배웅하며 안타까운 심정을 시로 노래한다.

 

나의 혼은 그대를 좇아가고
빈 몸만 문에 기대어 섰소

 

그러자 부용도 시로써 이렇게 화답한다.

 

나귀걸음 느리기에 내 몸 무거운가 했더니
남의 혼 하나를 함께 싣고 있었소

 

훗날 김 대감이 부용을 부르니 부용은 한양 남산 중턱에 신방을 차린다. 김 대감의 친구들은 부용을 ‘초당마마’라고 부르며 부용과 함께 즐기는 것을 무척이나 좋아했다고 한다. 두 사람이 인연을 맺은 지 15년이 되는 1845년 봄, 김 대감은 92세로 세상을 떠나는데 부용의 나이 겨우 33세였다. 부용은 외부와의 교류를 일체 끊고 고인의 명복만을 빌며 16년을 더 살다 뒤를 따른다. 부용의 유언은 대감마님이 있는 천안 태화산에 묻어달라는 것이었다.

 


暮春出東門 저문 봄날 동문을 나서며

日永山深碧草薰 낮은 길고 산이 깊어 푸른 풀 향기로운데

一春歸路杳難分 봄날이 가는 길이 아득하여 분별하기 어렵네요

借問此身何所似 물어봅니다, 이 몸은 무엇과 같아보이나요

夕陽天末見孤雲 석양녘 하늘 끝에 보이는 외로운 구름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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