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살이의꿈

로마인의 묘비명

샌. 2018. 1. 4. 19:22

고고학자들은 로마 시대의 공동묘지를 발굴하고 묘비를 찾아낸다. 돌에 새겨진 묘비명은 2천 년의 세월이 흘러도 다른 것에 비해 잘 보존될 수 있다. 무덤의 비문을 통해 옛 로마인의 죽음에 대한 생각을 더듬어볼 수 있다.

 

<고대 로마 제국 15,000킬로미터를 가다>라는 책에 나오는 로마인의 비문을 옮겨 본다.

 

나, 레미소 여기에 묻히다. 단지 죽음만이 나를 일로부터 떼어놓았다.

 

거기 지나가는 당신, 이리로 오게. 잠시 쉬었다 가게. 고개를 가로젓는 것을 보니, 싫은가? 어쨌든 당신은 이곳으로 돌아오게 될 것이네.

 

18세까지는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 살았고, 부친을 사랑했고, 모든 친구들을 사랑했네. 농담하고, 즐기고, 당신도 그렇게 하기를. 여기 이곳은 너무도 엄숙하다네. 이 글을 읽는 당신, 건강하게 살게. 그리고 죽음의 순간을 맞이하게 될 때까지 사랑하고 사랑받으며 살게나.

 

나는 지병인 통풍으로부터 자유롭게 해방되었다네. 이제 더 이상 분할 납부를 하지 않아도 되네. 이제는 쉴 곳을 항상 무료로 이용한다네.

 

우리는 아무 것도 아니며 결국에는 죽을 것이다. 이 글을 읽는 당신, 생각해보게. 우리는 무에서 무로 빠르게 흘러간다.

 

명예로운 노년과 오랜 공직을 끝으로 나는 여기 신들 곁으로 불려왔다. 자식들이여, 왜 슬피 운단 말인가?

 

나는 출산 중에 죽었으며 좋지 못한 운명을 맞이했다. 하지만 나의 사랑하는 사람이여, 이제 울음을 그치고 우리의 자식을 위한 사랑을 남겨둬요. 나의 정신은 이제 하늘의 별들 사이에 있습니다. 루스티체이아 마트로나, 25년을 살다 감.

 

여기 좋은 엄마이자 좋은 아내인 에페시아가 잠들다. 그녀는 의사들의 예상과는 달리 그들의 잘못으로 인해서 고열로 죽었다. 이 범죄에 대해서 단지 하나의 위안이 있다면, 그것은 그토록 상냥한 한 여인이 죽은 것이 그녀가 신들의 친구로 더 적합했기 때문이라는 믿음밖에 없다.

 

나 플로리우스, 천상의 마차부자리의 소년, 여기에 잠들다. 나는 서둘러 달려가려다 너무 일찍 어둠 속으로 떨어졌네.

 

나는 너무 많이 눈물을 흘렸네. 그리고 고통이 끝난 것이 기쁘다네. 이제 죽었으니 더 이상 슬픔은 소용없다네.

 

이곳에 연극의 대가로서 대략 100년을 살았던 레부르나가 묻혀 있다. 나는 이미 여러 차례 죽은 바 있다네. 하지만 결코 지금 같지는 않았다네. 저 높은 곳에서 당신들의 건강을 기원하겠네.

 

칼리스테는 16년 3개월 6시간을 살았다. 그는 10월 15일에 결혼할 예정이었지만, 11일에 죽었다.

 

가이우스 루키우스 플로리우스의 해방노예 루키우스 카에킬리우스는 16년 6개월을 살았으며.... 이 무덤에 대변을 보거나 소변을 누는 자는 분노한 천상과 지옥의 신들로부터 보복을 받을 것이다.

 

현대의 무덤에는 죽은 자를 향한 기념의 글을 쓰지만, 로마인의 무덤에서는 반대로 죽은 자가 우리를 향해 말하는 게 특이하다. 일인칭의 비문은 묘지를 찾아갈 때 고인과 함께 있음을 실감나게 느낄 수 있을 것 같다. 우리처럼 비문에 화려한 행적을 적고 자랑하는 것보다는 훨씬 나아 보인다.

 

로마인의 비문은 현대인보다 더 여유가 있고 유머러스하다. 베스파시아누스 황제는 임종에 닥쳐서 "슬프게도 이제 신이 되려고 하는구나"라는 말을 남겼다. 황제가 죽으면 신격화되는 로마의 전통을 빗대어 말한 것이다. 확실히 옛날 사람들이 죽음을 우리보다 더 의젓하고 자연스럽게 맞았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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