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읽는기쁨

오징어와 검복 / 백석

샌. 2018. 1. 13. 12:00

오징어는

오래동안

뼈가 없이 살았네.

 

오징어는

뼈가 없어

힘 못 쓰고

힘 못 써서

일 못 하고,

일 못 하여

헐벗고 굶주리였네.

 

헐벗고 굶주린

오징어는 생각했네-

"남들에게 다 있는 뼈

내게는 왜 없을까?"

 

오징어는 아무리

생각해 봐도

저로서는 그 까닭

알 수가 없어

이곳 저곳 찾아가

물어 보았네.

 

오징어는 맨 처음

농어 보고 물었네

"내게는 왜

뼈가 없나?

어찌하면

뼈를 얻나?"

 

농어가 그 말에 대답했네-

"너는 세상 날 때부터

뼈가 없단다,

뼈 없이 그대로

살아가야지."

 

오징어는

농어의 말

믿기잖고 분하여,

그래서 이번에는

도미 보고 물었네

"내게는 왜

뼈가 없나?

어찌하면

뼈를 얻나?"

 

도미가 그 말에 대답했네-

"너는 네가 못난 탓에

제 뼈까지 잃은 거지.

못난 것은 뼈 없이

살아가야지."

 

오징어는

도미의 말

믿기잖고 분하여,

그래서 이번에는

장대 보고 물었네

"내게는 왜

뼈가 없니?

어찌하면

뼈를 얻나?"

 

장대는 이 말에 대답했네-

"네게두 남과 같이

뼈가 있었지.

그러던 걸 욕심쟁이

검복이란 놈

감쪽같이 너를 속여

빼앗아갔지.

검복을 찾아가서

뼈를 도로 내라 해라."

 

장대가 하는 말을

옳게 여긴 오징어

검복에게 달려가서

빼앗을 뼈 내라 했네.

 

그러나 검복은

소문난 욕심쟁이

남의 뼈를 빼앗아다

제 뼈를 만드는 놈

 

오징어가 하는 말을

검복은 듣지 않고

그 굳은 이빨 벌려

오징어를 물려 했네.

 

오징어는 겁이 나서

뺏긴 뼈를 못 찾은 채

도망쳐 달아 가다

장대와 마주쳤네.

 

오징어가 하는 말을

다 듣고 난 장대

오징어께 이런 말

일러 주었네-

"제 것을 빼앗기고

도로 찾이 못하는 건

그것은 겁쟁이

그것은 못난이

 

검복이 힘 세다고

싸우지 않고

겁이 나 쫓긴다면

빼앗긴 뼌 못 찾지."

 

장대의 말을 듣고

오징어 마음 먹었네-

목숨 걸고 검복과

싸워내기로

 

오징어는 그 이튿날

검복을 또 찾아가

빼앗아 간 제 뼈를

도로 내라 하였네.

 

그러나 검복은

소문난 욕심쟁이

오징어의 옳은 말

들으려고 아니 했네.

 

그리고는 두 눈깔

뚝 부릅뜨고

그 굳은 이빨

떡 벌리고

찌르륵 소리

높닿게 치며

오징어를 물려고

달려들었네.

 

그러나 오징어는

어제와 달라

겁 먹고 달아날

그는 이미 아니였네.

 

무섭게 달려드는

검복에게로

오징어도 맞받아

달려들며

입을 쩍 벌리면서

먹물 토했네.

시커먼 먹물을

찍찍 토했네.

 

검복은 먹물 속에

눈 못 뜨고

숨 못 쉬고

갈팡질팡 야단났네.

 

이통에 오징어는

검복의 등을 타고

옆구리를 푹 찔러

갈비뼈 하나 빼내였네.

 

그런데 바로 이때

검복의 질러대는

죽어가는 소리 듣고

우루루 달려왔네-

농어가 달려왔네

도미가 달려왔네.

 

그것들은 달려와

검복과 한편 되여

오징어께 대들었네

 

오징어는 할 수 없이

달아나고 말았네

빼앗긴 뼈 중에서

하나만을 겨우 찾고

분한 마음 참으며

할 수 없이 돌아왔네.

 

잘 싸우고 돌아온

오징어를 찾아와서

장대는 말하였네-

"우리들이

도와줄게

빼앗긴 뼈

다 찾으라."

 

그러자 그 뒤 이어

칼치 달째 찾아와서

오징어께 말하였네-

"우리들이

도와줄게

빼앗긴 뼈

다 찾으라."

 

그러자 오징어는

마음 먹었네

못 다 찾은 제 뼈를

다 찾고야 말려고

굳게 굳게 이렇게

마음 먹은 오징어

검복과 싸우려고

먹물 물고 다닌다네.

 

검복과 한편 되어

검복을 도와주는

검복과 같은 원쑤-

농어와 도미와도

오징어는 싸우려고

먹물 물고 다닌다네.

 

뼈 없던 오징어께

뼈 하나가 생긴 것은

바로 그 때 일

 

그러나 빼앗긴 뼈

아직까지 다 못 찾아

오징어는 외뼈라네.

 

살결 곱던 검복이

얼룩덜룩해진 것은

바로 그 때 일

 

오징어가 토한 먹물

그 몸에 온통 묻어

씻어도 씻어도 얼룩덜룩.

 

- 오징어와 검복 / 백석

 

 

북에 남은 백석의 행적에 대해서는 확실한 게 없다. 그쪽 체제에 적응을 하지 못했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그분의 시를 볼 때 예상된 일이기도 했다. 이 작품은 1957년에 발행된 백석 동화시집 <집게네 네 형제>에 실려 있다. 북 생활 초기에 백석은 번역 일과 함께 동화를 주로 썼다. 시의 운율 형태로 표현한 것이 동화시인가 보다.

 

북 체제의 입맛에 맞는 작품을 써야만 했던 백석의 고뇌가 읽힌다. 짐작이지만 백석의 성향으로 볼 때 사상적으로 온전히 동화되기는 힘들었을 것이다. 여기 나오는 '원쑤'라는 단어는 백석과는 어울리지 않는다. 만약 백석이 남에 있었더라면 향토적이며 서정적인 작품을 많이 남겼으리라. 가지 못하는 고향에 대한 그리움이 더 절절이 그려졌을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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