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위의단상

심야 바둑

샌. 2018. 2. 8. 21:02

윗집에서는 밤 12시 전후 두세 시간 동안 한바탕 소란이 일어난다. 그때는 잠도 못 자고 아무 일도 할 수 없다. 고작 음악을 크게 틀어놓고 소동이 잦아지길 기다릴 뿐이다. 직접 고충을 전하고, 관리사무소에 중재도 요청했지만 별로 나아지지 않는다.

 

스트레스가 심하지만 어쩔 수 없다. 적응해 살자면 내가 변할 수밖에 없는 일이다. 지금은 잠자리에 드는 시간이 아예 새벽 1시 이후로 늦추어졌다. 자다가 깨게 되면 더 짜증이 나기 때문이다. 윗집이 잠잠해져야 나도 침대에 들어간다.

 

요사이 내가 쓰는 방법은 바둑 두기다. 소음 스트레스를 잊는데 바둑이 최고라는 걸 발견했다. 바둑에 집중하다 보면 웬만한 소음은 비껴간다. 그동안 여러 가지 방법을 시도해 봤지만 한계가 있었다. 마인드 컨트롤은 내 인격으로는 감당이 안 되고, 제일 효험이 좋은 게 바둑이다.

 

인터넷 바둑은 호흡이 빠르고 거칠어 나와는 맞지 않는다. 그런데 윗집 덕분에 어쩔 수 없이 컴퓨터로 대국을 하게 되었다. 아직 익숙해지지 않아선지 컴퓨터 바둑은 바둑을 둔다기보다 전자 게임을 하는 것 같다. 그렇지만 몰입도는 바둑판으로 두는 것과 차이가 없다.

 

 

한밤중에 윗집의 축제가 시작되면 나는 컴퓨터 앞에 앉는다. 한게임 바둑에 가입했는데 내 실력으로는 6단 정도가 적당한 것 같다. 상대가 누군지 몰라도 게임이 시작되면 승부욕이 발동한다. 몸의 감각은 온통 모니터에 집중되고, 그동안은 옆에서 난리가 나도 모른다. 이보다 더 나은 마취제가 없다.

 

이렇게 임시방편으로 때우고 있지만 언제까지 갈지 모르겠다. 사람이 너무 밀집해서 살다 보면 부지불식간에 피해를 주는 일이 생긴다. 이럴 때 역지사지로 배려해 주는 마음이 필요하다. 아래층이 어떤 고통을 겪고 있는지 조금만 헤아려주면 좋으련만,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그런 바람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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