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속일상

성지(22) - 천진암

샌. 2020. 4. 3. 13:38

33. 천진암

경기도 광주시 퇴촌에 있는 천진암(天眞庵)은 주어사(走魚寺)와 함께 한국 천주교회의 발상지다. 천주교의 시작이 불교와 연관 있는 게 흥미롭다. 어쩌면 '천진(天眞)'이라는 이름에서 이미 천주교과의 인연이 예비되어 있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이곳에서 1779년에 이벽, 정약전, 권철신 등 젊은이들이 모여 천주교 책을 읽고 실천하는 일을 토론하였다.

그 뒤로 황폐해진 천진암 터를 1978년에 천주교에서 매입하면서 성역화 사업이 시작되었다. 이듬해부터 이벽을 시작으로 정약종, 이승훈, 권철신, 권일신의 묘를 이곳으로 이장했다. 현재는 100년 계획으로 천진암 대성당을 지을 터까지 조성해 놓았다.

천진암 성지 입구.

입구에는 천진암을 상징하는 오두막과 다섯 성인을 그린 성화, 마리아상이 있다.

오르막 끝에 있는 대형 십자가.

5만 평 부지에 지어질 대성당은 사방 길이가 195m, 지붕 높이가 85m다. 올해까지 기초 공사가 완료되고, 내년부터 2040년까지 골조 공사, 2070년까지 조적 공사를 거쳐 한국 천주교회 창립 300주년이 되는 2079년에 완공할 예정이다.

높이 22m의 세계 평화의 성모상. 1917년 파티마에서 발현한 성모의 모습을 목격한 루치아 수녀의 조언을 통해 만든 성모상을 확대한 것이다.

성모상 앞 화단에 핀 수선화.

1999년에 건립된 성모 경당은 약 1천 명의 신자가 미사를 드릴 수 있다.

묘역으로 올라가는 길 옆 계곡을 따라 현호색이 꽃밭을 이루고 있다.

한국 천주교회 창립 선조 5인 묘역. 이벽 세례자 요한, 이승훈 베드로, 권일신 프란치스꼬 사베리오, 권철신 암브로시오, 정약종 아오스딩이 모셔져 있다.

이벽 선생의 천진암 강학터로 추정되는 곳. 조선 시대 선비들은 조용한 곳에 독서처를 잡고 몇 년씩 숙식하면서 학문을 연구하고 심신을 수양했다고 한다.

천주교 창립 200주년 기념비문.

묘역 올라가는 계단에는 제비꽃이 많이 피어 있다.

이곳에서 강학하던 분들이 마신 것으로 추정되는 샘물로, 빙천수(氷泉水)라고 부른다.

천주교 창립 선조 가족 묘역으로 가는 길.

천진암 가르멜 여자수도원 정문.

이번 천진암 순례에는 손주가 동행했다. 성당 유치원에 다닌다고 기도 흉내를 내는 게 제법이었다. 그러나 관심사는 오로지 풀과 물고기다.

천진암은 우리가 천주교에 입교하고 나서 제일 많이 다닌 곳이다. 초기에는 봄꽃을 보기 위해서 자주 찾았다. 그때는 이른 봄이면 귀한 너도바람꽃도 많이 피었다. 오랜만에 찾은 천진암의 봄은 전과 다름없이 현호색이나 제비꽃을 비롯한 봄꽃이 지천으로 피어 있었다.

천진암 성지는 엄청나게 넓다. 중앙 넓은 터는 대성당 건축을 위해 대기 중이다. 과연 이곳에 대성당을 짓는 게 의미 있는 일인지 올 때마다 의문이 든다. 이런 산골에 대성당의 활용도가 얼마나 될까. 원래 천진암은 신앙의 선조들이 스스로 학문을 연마하며 천주교를 탐구하던 장소다. 그런 의미에 맞는, 신앙 여부를 떠나 많은 사람이 참여할 수 있는, 종교와 문화가 만나는 복합적인 공간이 되었으면 좋겠다. 계획대로라면 내년부터 본격적인 성당 공사가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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