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속일상

한밤중의 전화벨 소리

샌. 2020. 9. 26. 12:32

한밤중에 울리는 전화벨 소리는 무섭다. 누구나 급한 일이 아니고서야 잠잘 시간에 전화를 걸지는 않기 때문이다. 지난 20일 밤에 머리맡에 있던 휴대폰이 부르르 떨었다. 화면을 보니 동생 이름이 떴다. 가슴이 쿵쾅거리며 뛰기 시작했다.

어머니가 입원하셨다는 연락이었다. 다음 날 내려가서 닷새 동안 병실 지킴이를 했다. 다행히 심각한 병은 아니어서 일주일 정도의 입원으로 퇴원이 가능했다. 어머니는 아흔이 되실 때까지 한 번도 입원해서 병원 신세를 진 적이 없을 정도로 강건하신 분이다. 퇴원 날짜를 받아 놓고 나는 농담 삼아 말했다. "돌아가시기 전에 입원해 보는 경험도 했으니 감사하세요."

2인실에 있었는데 막바지에 옆 침대 천하무적 환자가 들어왔다. 80대 할머니였는데 호통을 치면 간호사들이 꼼짝 못 했다. 보통은 환자가 의료진의 비위를 맞추며 눈 밖에 나지 않기를 바라는 데 이 할머니는 반대였다. 거의 종을 부리는 듯한 기세였다. 목소리도 걸걸하고 우렁찼다. 자주 병원을 드나들었는지 간호사도 할머니의 사정을 아는 듯했고, 맞대응하기도 지쳤는지 피하는 경우가 많았다. 어디서나 막무가내는 어찌할 수 없는 것 같다.

며칠 병원에 있어 보니 간호사들이 정말 고생한다는 걸 느꼈다. 아픈 환자와 항시 접촉한다는 게 엄청 스트레스일 것 같다. 최고의 직업으로 의사와 판검사를 치는데, 사실 따지고 보면 병자나 죄인과 늘 부딪쳐야 한다. 군대에 있을 때 법무참모가 나를 보며 부러워했었다. "나는 평생을 죄지은 사람과 상대해야 하는데, 안 일병은 새싹 같은 아이들과 지낼 수 있으니 얼마나 좋아." 그때는 피식 웃어넘겼지만 참모의 말이 진심이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낮에 시간이 날 때는 병원 앞 낙동강변을 산책했다. 4대강 자전거길이 지나는 길이고, 군데군데 공원이 잘 꾸며져 있었다. 우리나라는 어디를 가나 시민을 위한 편의 시설은 나무랄 데 없다.

올라오는 길에 월영교와 이천동 마애여래입상을 잠깐 들렀다.

정식 이름은 '안동 이천동(泥川洞) 마애여래입상'이지만 '제비원 석불'이 익숙하다. 어렸을 때 대구를 오가면서 눈에 익었던 석불이어서 볼 때마다 정겹다. 화강암 석벽에 불두(佛頭)를 얹었는데, 큰 바위가 넉넉한 부처님의 품을 상징하는 것 같다.

한 여인이 바위에 이마와 양손을 붙이고 오랫동안 기도를 하고 있었다. 인생은 고해(苦海)라고 하지 않으셨던가, 병원에서 본 많은 사람이 눈앞에 어른거렸다. 그중에서도 아침에 엘리베이터에서 만난 부녀가 잊히지 않는다. 수술을 받으러 가는지 20대로 보이는 딸은 이동 침대에 누워 초점 잃은 눈동자를 이리저리 굴리고 있었고, 아버지는 한없이 슬픈 표정으로 딸의 얼굴에서 눈을 떼지 못하고 있었다. 하늘로 올려지는 수많은 인간의 기구는 어디로 가고 있을까. 천년 석불은 말없이 인간 세상을 내려다 보고 계시다.

'사진속일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코로나 추석  (0) 2020.10.02
포천 나들이  (0) 2020.09.30
하늘 좋은 날  (0) 2020.09.19
연천 나들이  (0) 2020.09.16
폭신한 뒷산  (0) 2020.09.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