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속일상

수타사 산소길과 구룡령 옛길

샌. 2010. 10. 16. 14:39


강원도 여행 첫날은 공작산에 있는 수타사 산소길을 걸었다. '산소길'은 강원도에서 만든 숲길 이름이다. 2018년까지 약 70개의 산소길을 조성할 계획이라고 한다. 총 길이는 500 km 가까이 된다.수타사 산소길은 그중에서 첫 번째로 만들어진 길이다.

 

길은 수타사(壽陀寺)에서 시작하여 수타사 계곡을 따라 올라갔다가 다시 반대편으로 해서 내려오게 되어 있다. 전체 길이는 약 4 km가 된다. 계곡 오른쪽으로 해서 올라가는 길은 부드럽고 완만한데 왼쪽으로 내려오는 길은 상대적으로 오르내림이 심하다.

 




수타사 계곡은 흰 암반과 바위가 어우러져 아름다웠다. 길 중간 쯤에 있는 귕소는 특히 눈길이 갔다. '귕'은 소여물통을 가리키는 말이다. 굵은 나무를 길게 파내어 소여물을 담았다. 이곳의 생긴 모양이 닮아서 그런 이름이 붙었을 것이다.

 

계속 올라가니 별장으로 사용하는 듯한 빈 집들이 나왔다. 논에서는 아줌마들이 볏짚을 묶고 있었다. 지나가는 우리들을 뚫어져라 쳐다본다. 그 시선이 부담스러웠다. 너무 많이 올라왔는지 반대편으로 계곡을 건너는 길이 험했다. 귕소를 회귀점으로 잡는 경로가 보통인 것 같다.

 

수타사 산소길은 넉넉히 두 시간 정도를 잡고 산책할 수 있는 좋은 숲길이다. 강원도에서 이런 산소길을 곳곳에 준비한다니 더욱 기대가 된다.

 




동생집에서 일박했다. 동생은 산골에 완전히 정착하고 안정되었다. 동생 부부의 모습에서는 이젠 여유로움이 느껴진다. 동행한 Y 덕분에 저녁 반주에서부터 새벽이 되도록 술을 마셨다.

 

뒷산에 오르지는 못하고 집 마당에 망원경을 설치했다. 키 큰 소나무들로 시야가 열리지 않았지만 다행히 목성은 보였다. 그러나 망원경을 설치하고 나니 구름이 몰려왔다. 짧게 비도 뿌렸다. 밤 세 시가 되어서야 하늘이 잠깐 열리고 목성을 볼 수 있었다. 4개의 위성과 목성의 줄무늬가 선명했다. 그동안에도 구름이 오락가락해서 목성은 숨바꼭질을 했다. 지금이 목성을 볼 수 있는 최적의 기간이다. 그러나 안드로메다은하는 찾지를 못했다. 오랜만에 밤하늘을 보니 별자리 찾기가 만만치 않았다.

 


동생집 앞에 은행나무 숲이 있다. 20년생 은행나무 수백 그루가 심어져 있다. 개인 사유지이기 때문에 평상시에는 들어갈 수 없는데 이번 가을에는 개방했다. 원래 한적한 곳인데 이상하게 사람이 많다 했더니 신문에 이곳이 소개되었다고 한다. 작품사진을 찍는 사람들이 많이 찾아왔다. 동행했던 H와 S는 졸지에 모델이 되었다.

 

 

 


구룡령 옛길을 걸었다. 구룡령에서부터 갈천리까지 약 4 km 거리였다. 차는 갈천리에 세워놓고 동생이 출발지인 구룡령 휴게소까지 우리를 태워주었다.

 

구룡령(九龍嶺) 옛길은 양양군과 홍천군을 잇는 해발 1089 m 높이의 고갯길이다. 영서 산지와 영동 해안을 연결하던 교역로였다. 일제 시대 때 구룡령을 넘는 도로가 뚫리면서 이 길은 잊혀졌다. 옛길의 양양 쪽 고개 아래 마을이 갈천리이고 홍천 쪽은 명개리이다. 완전히 걷자면 두 마을을 이어야 하겠지만 우리는 고개 정상에서부터 갈천리로 내려가는 반쪽 길만 걸었다.

 

구룡령 휴게소에서 20분 정도 걸어 올라가면 옛길 정상이 나온다. 여기서 왼쪽으로 가면 명개리고, 오른쪽으로 가면 갈천리다. 갈천리로 가는 길은 순탄한 내리막이다. 길은 횟돌반쟁이, 솔반쟁이, 묘반쟁이를 거쳐 갈천리까지 이어진다. '반쟁이'는 반정(半程)의 강원도 사투리로 '거리의 반'을 뜻하는 말이다.

 


솔반쟁이는 금강송 군락지다. 1989년 경복궁을 복원할 때 이곳의 금강송도 사용되었다. 길에서는 그때 베어낸 금강송 그루터기를 여러 그루 만날 수 있다. 이 금강송은 수령이 약 200년 정도 되었다.

 

묘반쟁이에는 이런 얘기가 전한다. 옛날 홍천 수령과 양양 수령이 홍천과 양양의 경계를 정하기 위해 내기를 했다. 두 사람이 달려서 서로 만나는 지점을 경계로 삼기로 한 것이다. 양양 수령은 조금이라도 많기 가기 위해 노비 등에 업혀서 갔다. 몰론 노비는 수령을 업고 죽고살기로 뛰었을 것이다. 그런데 돌아오는 길에 노비는 지쳐서 죽고 말았다. 수령은 충성스런 노비를 위해 묘를 써줬는데 묘반쟁이에 있는 묘가 그 노비의 묘라고 한다.

 

구룡령 휴게소에서 갈천리까지 내려오는데 두 시간 반 정도 걸렸다. 내려오는 길이라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는데 그래도 만만히 볼 길은 아니었다. 다들 다리가 뻐근하다고 했다.

 


여행은 장소 못지않게 동행하는 사람이 중요하다. 자연 속에 들어서는 함께 자연을 즐길 수 있는 마음을 가진 사람이어야 한다. 취향이 다르다면 여간 피곤한 게 아니다. 이번 여행은 엉뚱한 데에 신경을 쓰는 통에 즐거움이 반감되었다. 돌아오는 길은 한계령을 넘어 인제를 거쳤다. 홍천에서부터는 고속도로를 타고 서울에 도착했다. 오후 다섯 시가 넘었는데 겨우 동료의 약속 시간에 맞출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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