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살이의꿈

아, 시원하다!

샌. 2022. 2. 17. 09:27

엔도 슈사쿠의 글에서 본 대목이다.

 

당신이 알고 있는 90세가 넘은 할머니가 있었다. 정신도 좋고 정정한 분이었는데 하루는 며느리와 함께 대중목욕탕에 갔다고 한다. 할머니는 먼저 옷을 벗고 욕탕 속으로 들어가더니 탈의실에 있는 며느리를 향해 말했다.

"아, 시원하다!"

잠시 후에 며느리가 욕탕 속으로 들어가니 시어머니는 욕조 가장자리에 걸터앉아 눈을 감고 있었다. 걱정이 된 며느리가 시어머니에게 말했다.

"어머니, 이런 데서 주무시면 안 돼요."

그러나 할머니는 미동도 하지 않았다. 이미 숨을 거둔 것이다.

 

이 이야기를 읽으며 나도 할머니가 눈물이 날 정도로 부러웠다. 이렇게 행복한 죽음도 있을 수 있구나, 지상에서의 마지막 말이 "아, 시원하다!"로 너무나 행복하고 평온하게 세상을 뜨신 것이다. 글자 그대로인 의미로서의 안락사(安樂死)인 - 평안하고 행복한 죽음 - 셈이다. "아, 시원하다!"라고 말하는 순간 할머니는 이미 천국에 머문 게 아닐까.

 

어떻게 죽느냐는 인생 최대의 과제다. 어떤 죽음이 찾아올지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죽음은 내 의지와 능력을 떠난 문제라 불가항력이다. 죽음을 아무리 궁구한들 실제 죽음에 도움이 된다고 장담할 수 없다. 어떤 상황이 닥칠지 몰라 수동적으로 기다릴 수밖에 없으니 죽음을 대비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그러나 비슷한 조건에서도 잘 죽는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이 있다. 죽음을 맞이하는 마음은 개인의 태도에 따라 달라진다.

 

나는 70년을 살았으니 이제 생에 대한 애착은 별로 없다. 죽을 때가 되면 기꺼이 죽어야 한다. 의술에 의지해서 자연의 순리를 거역하고 목숨을 연장하고 싶은 마음은 추호도 없다. 병약한 몸으로 더 산들 무슨 낙이 있을까. 장수를 누리는 즐거움도 있겠지만 그에 따르는 고통은 또 얼마나 클 것인가. 플러스 마이너스를 해 보면 오래 사는 게 이득이 되는 장사라고 할 수는 없을 것 같다.

 

다만 죽음의 과정은 걱정이 된다. 병으로 인해 겪어야 하는 고통만은 사양하고 싶다. 혹 정신줄을 놓아서 자의식도 지키지 못하면 어떻게 될까. 이런저런 생각에 빠지면 잠 못 드는 밤이 된다. 스스로 선택하는 죽음을 - 자살보다는 자유죽음이라는 말이 좋다 - 실행하자면 어떤 방법이 있을까. 과연 품위 있는 죽음이란 게 가능할까. 인생의 막바지에서 죽지 못해 살아간다는 말을 하고 싶지는 않다.

 

앞의 할머니처럼 죽는다는 의식도 없이 평화롭게 갈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이 생애에서의 마지막 말이 "아, 시원하다!"라면 멋지지 않은가. 다만, 민폐를 끼칠 테니 공중목욕탕은 말고 내 집 욕조라면 금상첨화일 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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