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위의단상

사람들은 왜 사이비에 빠질까?

샌. 2023. 3. 19. 13:52

넷플릭스에서 공개된 다큐멘터리인 '나는 신이다'가 연일 화제다. 종교를 내세운 집단에서는 일어날 수 없는 충격적인 장면에 사람들은 경악했고, 동시에 사이비 종교에 대한 경각심을 높이는 계기가 되었다. 사람이 어떻게 저런 사악한 교주나 교리에 끌려 신도가 될 수 있는가, 라는 의문도 자연스레 들게 된다.

 

먼저 이단과 사이비는 구별해야 한다. 이단은 경전을 정통 교단의 가르침과 다르게 해석하는 집단이다. 지금의 기독도교 초창기에는 이단이었음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예수를 메시아로 믿고 따르던 초기 기독교회는 유대교로부터 박해를 받았다. 스데반은 유대인에 의해 돌에 맞아 죽은 최초의 순교자였다. 개신교가 시작된 루터의 종교개혁 역시 가톨릭계로부터 이단시되었다. 그러므로 이단이라는 표현보다는 비주류라고 불러야 맞다. 주류와 다른 생각을 한다고 정죄되어서는 안 된다.

 

사이비는 종교의 탈을 쓰고 신도를 착취하면서 교주 개인의 탐욕을 채우는 사기 집단이다. 사이비 종교는 비윤리적일 수밖에 없으며 폐쇄적이고 교주를 숭배하는 특성이 있다. 사이비 종교는 돈, 섹스, 권력을 추구한다. 이것들은 인간의 지배욕과 관련이 있다고 본다. 신과 동급으로 숭앙받는 사이비 교주라면 신도들은 자신의 지배욕을 충족시키는 도구일 뿐이다.

 

사람들은 왜 사이비에 빠질까? 먼저 교주 개인의 카리스마나 자질 때문일 수 있다. 그러나 '나는 신이다'에 나오는 교주들을 보면 전부 허접한 인간들이다. 사회에 나오면 평균에도 미치지 못할 정도로 수준 이하다. 사이비에 빠지고 나면 다르게 보일테지만 일반인들 눈에는 너무 하찮게 보인다. 도대체 저런 인간들에게 재산을 갖다 바치고 목숨까지 버리며 복종하는 것이 불가사의다. 사이비 교주 대부분의  영적 수준이나 자질은 함량 미달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사이비 종교의 피해자가 자존감이 약하거나 정서적으로 불안한 상태였을 수 있다. 외롭고 절망에 빠져 있을 때 누군가 친절하게 다가온다면 흡수되기 쉬울 것이다. 조금씩 세뇌를 당하다가 보면 어느덧 헤어나지 못하는 늪에 빠져 있게 된다. 이렇듯 피해자에게 책임을 전가하기 쉽다. 그러나 연구에 따르면 피해자들은 우리와 다르지 않다고 한다. 지적 수준도 높고 세상을 낙천적으로 보는 사람도 많았다. 특별히 우울한 상태에 있지도 않았다. 한나 아렌트의 평범성이 여기서도 적용된다. 기회를 안 만나서 그렇지 우리들 누구나 사이비 종교의 함정에 빠질 가능성이 있다. 사이버 종교는 보이스 피싱과 비슷하다. 나는 안 그렇다고 큰소리치지만 막상 당하면 이성이 마비되고 만다.

 

사이버 종교 집단의 일원이 되고 하나로 동화되는 과정에서 제일 큰 힘을 발휘하는 것이 '언어의 힘'이라고 하는 분석을 본 적이 있다. 우리는 언어로 세상을 이해한다. 언어가 제시하는 개념은 인간의 가치관을 결정하게 된다. 사이비 종교는 공통적으로 그들 집단 나름의 특수한 언어가 있다고 한다. 기성 종교 용어를 그대로 사용한다면 집단의 일치감을 유지하기가 힘들 것이다. 예를 들면, 몸은 그릇, 죽음은 졸업, 예배당은 방주라고 표현하는 식이다. 죽음을 졸업이라고 말하기 시작하면 죽음은 삶의 완성이 되고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게 된다. 교주의 한 마디에 기꺼이 목숨을 내놓을 수 있다.

 

어느 사이비 종교 집단에서 작성한 글을 본 적이 있다. 생소한 종교 용어들이 난무해서 도대체 무슨 의미인지 이해하기 힘들었다. 다른 데서 얘기를 들으니 그게 바로 그 집단에서 노리는 바라는 것이다. 신비감이 들게 하는 언어를 의도적으로 사용함으로써 사람들을 맹목적 복종의 길로 이끈다. 사이비 종교는 언어를 통해 사람들을 세뇌하고 통제한다는 사실이 그럴듯하게 생각되었다. 이것은 강제로 색안경을 씌우는 것과 같다. 획일적인 사고를 강요하는 것이다. 구성원들은 스펀지가 물에 젖듯 집단의 사고에 녹아든다. '이것이 진리다'라는 확신이 들면 되돌아올 길이 막힌다. 진리에 대한 확신과 선민의식은 구성원을 더욱 외골수로 만든다. 

 

사이비 종교에 '왜' 빠지는가가 아니라 '어떻게' 빠지는가에 주목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사이비 종교가 작동하는 방식을 알면 위험에 빠질 가능성을 줄일 수 있기 때문이다. 확대 해석하면 사회 속의 우리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태어날 때부터 사회와 기성 세대가 주입하는 이데올로기나 고정관념에 노출되어 있다. 사회 또는 특정 그룹이 제시한 언어와 개념으로 세상을 바라본다. 이 역시 일종의 색안경이다. 가장 경계할 것은 무비판적인 수용이며 확신이다. 무엇이든 의심하고 질문해야 한다. 확증편향 속에서 누리는 가짜 행복보다는 불행한 회의주의자나 불가지론자가 오히려 낫다.

 

사람들이 사이비 종교에 빠지는 이유가 한 가지만이겠는가. 사회적이거나 개인적인 여러 원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일 것이다. 요사이 우리 사회는 좌우 양편으로 갈라져서 극심한 이념 투쟁을 보이고 있다. 상대편을 인정하지 않고 적대시한다. 이것은 사이비 종교가 세상을 이분법으로 가르고 '우리와 저들'을 구분하면서 상대를 악마화하는 것과 비슷하다. 우리도 사이비 종교의 사고방식에 지배당하고 있는 것이다. 서로의 다양성을 인정하고 포용하면서 상호 차이로 인해 생길 수 있는 폭력성을 걸러내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을 한다. 그렇게 되면 사이비에 미혹되는 사람도 줄어들지 않을까.

 

사이비(似而非)의 어원은 <맹자>에 나오는 '사시이비(似是而非)'라고 한다. 직설적으로 옮기면 '옳은 것과 닮았으나 바르지 않은 것'이 된다. 겉으로는 그럴 듯하지만 속은 썩어 있는 것이다. 맹자가 말한 '시비지심(是非之心)'이 오늘따라 더 절실하게 다가온다. 시비지심(옳고 그름을 분별하는 마음)이야말로 지혜의 시작이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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