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위의단상

피아비의 인간 승리

샌. 2023. 4. 2. 10:25

부쩍 당구에 관심이 많아졌다. 쓰리 쿠션을 감각으로만 치다가 얼마 전부터 시스템을 공부하기 시작했다. 하프, 파이브 앤 하프, +2 시스템이 처음 접했을 때는 복잡했는데 알고 보니 재미가 있다. 스트로크 자세 등 기본이 안 되어 있다는 것도 발견했다. 처음부터 새로 배우고 적응하는 중이다.

 

당구에 쏠리다 보니 자연히 당구 선수들에게도 관심이 간다. PBA 시합이 있을 때는 빠짐없이 시청하면서 좋아하는 선수를 응원한다. 그중에서 캄보디아 출신의 스롱 피아비 선수가 있다. 당구를 잘 치면서 역경을 딛고 일어선 인간 승리의 스토리가 감명을 주는 선수다. 더해서 선한 인간성도 갖추고 있다.

 

피아비는 가난한 캄보디아에서 부모를 도우며 농사를 짓고 살다가 코리아 드림을 꿈꾸고 한국 남자에게 시집을 왔다. 2010년 그녀의 나이 스무 살 때였다. 남편과는 28살 차이가 났다. 타국 생활에 힘들어하자 남편은 피아비를 당구장에 데리고 가서 큐를 잡아보게 했다. 재능이 있음을 발견한 남편은 피아비를 당구 선수로 키우기로 한다. "살림은 내가 할 테니 당구 연습만 하라"며 당구 선생까지 구해주고 적극적인 외조를 했다.

 

피아비는 하루 12시간씩 당구에 매달렸다. 어떤 날은 20시간을  연습한 적도 있었다고 한다. 일반 선수들 연습량의 세 배였다. 성공해서 가족을 도울 길이 당구 하나밖에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피아비의 실력은 일취월장했고 선수 등록한 지 1년 만에 한국 1위에 올랐다. 세계선수권에서도 입상을 했다.

 

2021년에는 PBA로 전향해서 첫 우승을 했다. 2022-2023 시즌에는 투어 우승 2회, 왕중왕전 우승, 팀리그 우승이라는 트리플 크라운을 달성하고 최우수선수가 되었다. 상금 액수도 1억 원을 훌쩍 넘었다. 한 분야의 정상에 오르기가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누구나 안다. 피아비는 낯선 나라에 와서 오직 노력으로 그 꿈을 이루었다.

 

현재의 피아비가 된 배경에는 든든한 후원자인 남편이 있었다. 남편의 관심과 지원이 없었다면 지금과 같은 영광은 있을 수 없었다. 어쩌면 남편이 더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점에서 피아비는 행운아였다. 아니었으면 평범한 다문화가정 중 하나로 살아가고 있었을 것이다. 남편은 피아비의 상금으로 캄보디아에 학교를 짓고 어려운 아이들을 돕는데 앞장서고 있다. "나는 이들을 위해 살 것이다!" 피아비의 방 벽에는 가난한 캄보디아 아이들 사진 옆에 이런 글귀가 붙어 있다. 피아비가 캄보디아 국적을 유지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피아비의 성공 스토리를 보면 재능과 노력, 행운이라는 삼박자가 잘 맞아떨어진 것 같다. 한창 활동할 때에 마침 PBA가 생겨서 당구가 대중의 관심을 끌면서 돈을 벌고 스타 탄생이 가능하게 되었다. 아마추어 시절에는 우승해봤자 상금이 30만 원 수준이었는데 지금은 수천 만원이 되었다. 실력 있는 선수는 당구만으로 생활이 가능해졌다. 피아비가 최대의 수혜자가 된 셈이다. 피아비가 소속된 블루원 앤젤스 팀은 우승 기념으로 현재 스페인 여행 중이다. 사람은 무슨 분야에서든 시절을 잘 만나야 활짝 펼 수 있다.

 

피아비는 실력에 더해서 겸손하며 인품까지 훌륭하다. 자신보다 고국에 살고 있는 가난한 가족과 이웃들을 먼저 생각한다. 아마 이 점이 피아비 인기의 원인일 것이다. 다음 시즌에서도 멋진 활약을 기대한다. 동시에 새로운 스타가 등장해서 더욱 박진감 넘치는 경기를 펼쳐주기를 바란다. 동시에 내 당구 실력도 한 단계 올라갈 수 있는 해가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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