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살이의꿈

노인의 예절

샌. 2023. 6. 10. 10:40

노인을 대하는 예절이 아니라 노인'의' 예절이다. 평균수명이 짧았던 옛날에는 60을 넘기면 잔치를 열었고 70을 넘기는 경우는 드물었다. 젊은이는 많고 노인은 적었으니 노인은 집안이나 공동체에서 존경과 대우를 받을 수 있었다. 이제는 시대가 역전되었다. 통계에 의하면 우리나라도 2025년이면 65세 이상 비중이 20%를 넘는 초고령사회에 들어간다고 한다. 65세 이상 노인이 1천만 명을 넘어서는 것이다.

 

노인이 넘쳐나면 존경과 대우는커녕 자칫하면 거추장스러운 존재로 여겨지기 십상이다. 더구나 노인은 생산성이 없어서 경제적 측면에서 사회에 기여하는 바도 적다. 과거에는 지혜와 경륜으로 한몫했지만 이제는 첨단기술이 지배하는 시대여서 노인이 자리 잡을 영역은 좁아지고 있다. 시대에 뒤지지 않으려면 젊은이에게 물어봐야 한다. 그것도 눈치를 보면서. 이제는 대우받을 생각은 아예 품지 말고 노인으로서의 처신을 잘해야 하는 시대가 되었다.

 

노인이 많다 보니 꼴불견이 자주 눈에 띈다. 대중교통을 이용하거나 식당에서 보면 유난히 목소리가 큰 노인들이 있다. 주변의 눈총에도 아랑곳하지 않는다. 귀가 멀게 되면 자연히 목소리가 크게 되는 현상을 이해 못하지 않지만 주변 사람들에게 방해가 된다면 조심해야 할 일이다. 특히 전화 통화를 할 때 눈살을 찌푸리게 되는 경우가 흔하다. 급한 내용이 아니면 빨리 끊는 게 예의다. 버스나 지하철 안에서 제 집 안방인 양 큰소리로 통화하는 소리를 견뎌야 하는 건 고역이다. 젊은이도 예외가 아니지만 노인의 경우는 한 번 더 얼굴을 쳐다보게 된다. 그 숱한 세월을 헛 산 게 아닌가 싶기 때문이다. 

 

친구 모임에서 보면 식당에서 반주를 하게 될 때 제일 톤이 올라간다. 노인들 대화 소재는 뻔하다. 주로 건강, 공유하는 추억, 정치 문제가 씹을수록 맛나는 안주거리다. 옆에 앉은 나는 정치 얘기가 등장할라치면 아예 싹을 잘라버린다. 술을 끊은 뒤로는 더 예민해졌다. 전에는 같이 떠들고 했을 것이다. 술자리에 맨 정신으로 앉아있어 보니 언제 자리가 파할지를 제일 기다리게 된다. 미운 A는 끝나나 싶으면 꼭 "한 병 더!"를 외친다. 같은 레퍼토리를 30분 동안은 더 들어야 한다. 같이 어울리기 위한 반대급부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입은 닫고 지갑은 열어라'는 금언은 옳다. 노인이 될 수록 입이 무거운 사람이 되어야겠다고 다짐한다. 말은 적게, 낮은 소리로 해야겠다. '낮은 소리'란 목소리의 크기만이 아니라 내 견해, 고집을 강요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노인의 경계사항 중 첫째가 아집(我執)이다. 노자는 말했다. "살아있는 생명은 부드럽지만, 죽으면 딱딱해진다."

 

오늘 아침에 단톡방에서 작은 논쟁이 있었다. 한 친구가 또 편파적인 정치 찌라시를 올렸길래 내 불편함을 전했다. 전에도 사단이 벌어져 단톡방에서 나오는 일까지 있었는데 잠잠하다 싶더니 여전했다. 다행히 이번에는 친구로부터 정치 관련 내용은 올리지 않겠다는 대답을 들었다. '낮은 소리'는 SNS에도 해당한다. 쓰레기 같은 이미지가 SNS을 오염시키며 떠돌아다닌다. 부화뇌동이나 확신이나 죽어 딱딱한 결과물에 지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둘 사이에서 중용을 취하며 살아가기가 쉽지 않은 일임을 잘 안다. 

 

이제 우리 세대는 한 발 뒤로 물러날 때가 되었다. 있는 듯 없는 듯, 주위에서 의식하지 못하게 살아가면 된다. 그러자면 우선 목소리 톤을 낮출 필요가 있지 않을까. 내 친구는 나라를 구하겠다는 신념과 열정이 하늘을 찌를 듯하다. 이제는 무거운 짐을 내려놓을 때가 되었다고 전해주고 싶다. 세상사는 팩트가 아니라 팩트를 대하는 태도가 더 소중하기 때문이다.

 

인간 생활에서는 무엇보다 기본이 중요하다. 내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건 좋지만, 최소한 남에게 피해를 끼치는 일은 없어야 한다. 공자가 말한 '내가 싫은 일이라면 남에게도 행하지 마라[己所不欲勿施於人]'는 삶의 기본 원칙이다. 작은 일상에서부터 머리 속 사고까지 품위 있는 노년은 세월이 거저 가져다주지 않는다. 그만한 절제의 노력이 따라야 한다. 나는 이것을 노인이 지켜야 할 예절이라 부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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