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살이의꿈

심심함의 변명

샌. 2023. 6. 23. 12:07

나는 외출보다 집에서 보내는 날이 더 많다. 대략 두 배쯤 된다. 한 달이면 20일 정도는 집에 있고, 10일 정도밖에 나간다. 다른 사람에 비하면 활동량이 적은 편이다. 집에 있을 때는 특별히 하는 일 없이 빈둥거리며 지낸다. 당신은 심심하지도 않느냐고, 아내가 늘 신기해 한다.

 

사람들은 하루를 무언가로 채워야 한다고 생각한다. 일 없는 무료함을 견디지 못한다. 퇴직한 이후도 마찬가지다. 삶의 관성이란 무섭다. 봉사 활동이든 취미 생활이든 뭔가를 해야 한다. 그전까지 일 속에서 살아온 습관이 몸에 밴 것이다. 은퇴 후에도 바쁘게 보낸다는 것을 자랑으로 여긴다.

 

현대인은 혼자 있는 시간을 앗기고 있다. 휴대폰이 등장한 이후로는 더 심해졌다. 전철에서 보면 열에 아홉은 휴대폰으로 뭔가를 한다. 휴대폰이 없었을 때는 눈을 감고 있거나 멍하니 있을 혼자만의 시간이 주어졌다. 문명의 이기는 인간의 시간을 빼앗아가고 있다. 내 아는 사람은 빈 시간만 나면 인터넷에 연결하여 휴대폰으로 바둑을 둔다. 기다릴 때 이보다 더 시간을 보내는 좋은 방법이 없다고 한다. 과연 그럴까. 내가 볼 때는 하나를 얻고 둘을 읽는 짓만 같다.

 

'심심하다'는 어감상 '마음[心]'이 '쉰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다. 일상에서 바쁘게 쫓긴 마음에 휴식을 주는 행위다. 그러므로 이보다 더 귀한 시간이 없다. 아메리카 원주민은 바삐 달리다가도 잠시 걸음을 멈추고 기다린다고 한다. 영혼이 따라올 여유를 주기 위해서다. 심심한 시간이 하는 역할과 같다.

 

'심심하다'에서 'ㅁ'을 빼면 '시시하다'가 된다. 바쁜 현대인에게는 '심심하다'든 '시시하다'든 배척해야 할 단어들인지 모른다. 그러나 조금만 깊이 생각해 보면 둘 다 아름답고 가치 있는 말이다. 우리가 시시하게 여기는 것이 실은 얼마나 숨은 아름다움을 간직하고 있는지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다. 쓸모 있음을 뒷받침해주는 것이 쓸모없어 보이고 시시해 보이는 것들이다. 무언가 성과를 내야 알차고 의미 있는 시간을 보냈다고 여기지만 그 또한 텅 빈 여백이 있어야 가능한 일이다.

 

심심하게 산다는 것은 세상에 대해 죄를 덜 짓는 일이다. 타자에게 피해를 덜 주는 일이다. 요란하게 나대는 사람들이 - 특히 나라를 이끈다고 설치는 사람들 - 심심하게 살게 된다면 세상이 얼마나 좋아질까. 또한 '심'은 '깊음 [深]'이고 '구함[尋]'이다.

 

이런 것들이 내 심심함의 변명이다. 나는 삶의 에너지를 심심함에서 찾는다. 밖에 나가서 사람을 만나고 오면 피곤하고 지친다. 대신에 집에서 심심하게 지내야 활력을 얻는다. 타고난 기질 탓이 클지 모른다. "오늘도 심심한 하루가 되겠구나." 아침에 나는 조용히 속삭이며 흐뭇한 미소를 짓는다. 참 좋은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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