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살이의꿈

외롭고 쓸쓸하고 초라하게

샌. 2023. 8. 10. 16:12

교수직에서 은퇴하고 작은 섬에 들어가 사시는 분을 화면에서 봤다. 이분은 자신이 생각하는 삶의 덕목을 '외롭고 쓸쓸하고 초라하게'로 표현했다. 교수로 살면서 덧씌워진 명성과 과대포장된 삶을 벗고 본연의 나를 찾고픈 바람이 간절해 보였다.

 

하지만 속 마음이야 어떻든 섬에서 살아가는 삶은 외롭고 쓸쓸하고 초라하게 보이지 않았다. 교수인 삶을 살았던 조건(정신적, 경제적)을 떨쳐버리는 게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명성을 버린다 하면서 명성을 이용한다. 소유의 맛을 즐기면서 겉으로는 무소유를 내세우는 경우도 있다. 숨겨진 민낯이 드러나 비난을 받는 유명인도 심심치 않게 나온다. 차라리 무소유를 명분으로 내세우지 않았으면 좋으련만.

 

이상적/대안적 삶이 가진 자에 의해서 소비되고 있는 게 현실이다. 무소유라든가 '외롭고 쓸쓸하고 초라하게' 류의 언사는 아무런 경제적 어려움이 없는 사람에 의해서 말해진다. 하루 벌어 하루를 살아가는 사람에게는 이런 말을 하거나 귀를 기울일 여유가 없다. 

 

나답게 살고 싶은 바람은 누구에게나 있다. 하지만 대부분에게 꿈으로만 존재한다. 어떤 사람은 꿈을 꾸지도 못한다. 그들이 처한 물적인 여건이 사고나 운신을 제한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다른 무엇보다 체제를 제대로 응시해야 옳은 게 아닐까. 

 

선생의 삶을 폄하려는 것이 아니다. 반대로 존경의 염으로 바라본다. 도시의 안락한 삶을 외면하고 낙향하는 결단이 쉬운 일이 아니다. 우리들 대부분은 그저 주어진 현실에 만족하며 살아가는 소시민이다. 여생을 '외롭고 쓸쓸하고 초라하게' 살아가겠다고 마음먹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더 나아가 관념이 아니라 무위적 삶을 살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외롭고 쓸쓸하고 초라하게'를 적어놓고 오래 들여다본다. 나는 고개를 저으면서 한 시인을 생각한다. 

 

하늘이 이 세상을 내일 적에 그가 가장 귀해 하고 사랑하는 것들은 모두

가난하고 외롭고 높고 쓸쓸하니 그리고 언제나 넘치는 사랑과 슬픔 속에 살도록 만드신 것이다

초생달과 바구지꽃과 짝새와 당나귀가 그러하듯이

그리고 또 '프랑시스 잼'과 도연명과 '라이넬 마리아 릴케'가 그러하듯이

 

'참살이의꿈' 카테고리의 다른 글

손잡지 않고 살아남은 생명은 없다  (2) 2023.09.17
인생의 의의와 가치  (0) 2023.08.23
가만히 다정하게  (0) 2023.07.25
병원에 안 가려는 이유  (0) 2023.07.04
심심함의 변명  (2) 2023.06.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