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고본느낌

낮의 목욕탕과 술

샌. 2023. 11. 7. 10:05

가볍고 유쾌하게 읽을 수 있는 책이다. 제목 그대로 해가 떠 있을 때의 목욕과 술에 대한 예찬이다. 이런 소재로 재미난 책 한 권을 만들 수 있다는 게 신기하다. 마음먹기에 따라 인생에서 즐길거리는 사방에 널려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지은이인 구스미 마사유키는 일본의 만화가로 도쿄와 근교의 오래된 목욕탕을 순례하는 복고풍의 취미를 가지고 있다. 여기에 목욕 후 마시는 낮술의 달콤함도 빠질 수 없다.

 

"아직 밝을 때 목욕탕에 갔다가 또 아직 밝을 때 술을 마신다면 얼마나 기분 좋고 또 얼마나 맛있을까.

최고×최고, 그게 바로 낮의  목욕탕과 술이다.

지금 바로 일을 제쳐두고 가장 좋아하는, 혹은 아직 한 번도 가보지 못한 목욕탕에 가자. 그리고 그 근처에서 한 잔 마셔버리지, 뭐.

암, 그렇고말고.

이히히히."

 

행복은 멀리 있지 않다. 지은이처럼 사소한 일에서, 더구나 혼자서도 낭만을 즐길 수 있다. 지은이가 찾아가는 일본의 오래된 목욕탕은 우리나라의 옛날 목욕탕과 비슷해 보인다. 몸을 씻고 탕에 들어가 수증기 냄새에 파묻혀 몸을 녹인다. 피로가 풀리면서 하루를 처음으로 되돌려놓는 듯한 기분이다. 시원하게 몸을 씻고 산뜻한 기분으로 나서면 아직 하늘은 밝다. 이럴 때 근처에 있는 술집에 들른다. 아직 해가 떨어지지 않았을 때 마시는 술은 달다. 이런 루틴으로 지은이는 자신만의 목욕탕과 술집 순례를 풀어놓는다. 거기서 만나는 알몸의 사람들을 보며 직업이 무엇이며 성격은 어떠할지를 상상하는 즐거움도 누린다.

 

슬프게도 나는 목욕탕과 술과는 거리가 멀어졌다. 지은이와 같은 호사를 누릴 수가 없다. 목욕탕에는 못 간 지가 20년 가까이 된다. 귀 속 염증으로 물과는 상극이다. 나도 한때는 낮술 애호가였지만 지금은 끊은지 일 년이 넘었다. 그렇지 않았다면 이 책을 읽고난 뒤 당장 목욕탕과 술집으로 달려갔을 것이다. 타인의 글을 통해 간접체험으로나마 입맛을 다실뿐이다.

 

목욕탕과 술이 아닌 다른 일상의 즐거움을 어디서 찾을까 생각해 본다. 독서? 산책? 너무 정적이고 이야깃거리로는 뭔가 부족하다. 지은이처럼 큰소리칠 수 있는 삶에 윤기를 더해줄 유희는 무엇이 있을까.

 

"아직 해가 중천에 떠 있을 무렵,

목욕탕에서 나와서 마시는 맥주 한 잔!

거부할 수 있는 사람 있으면 나와 보라고 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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