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고본느낌

나를 살리는 글쓰기

샌. 2023. 10. 23. 11:06

시인, 비평가, 에세이스트, 문장 노동자, 독서광 - 이 책의 저자인 장석주 작가가 자신을 소개하는 말이다. 작가는 40년 동안 쉼 없이 책을 읽고 글을 쓰면서 100권에 가까운 저서를 낼 정도로 대단하신 분이다. 작가는 말한다. "글쓰기는 피와 종이의 전쟁이다."

 

<나를 살리는 글쓰기>는 글쓰기에 임하는 작가의 치열한 정신을 보여준다. 글쓰기는 유희가 아니라 자신의 전 존재를 투신하는 행위다. 전업작가의 글쓰기는 종교인의 처절한 수행과 닮았다. 그러므로 자기 발견이면서 자기 치유의 과정이기도 하다. 이 책에는 작가의 경험에서 우러난 글쓰기의 엄중함과 치열함이 잘 드러나 있다. 아무나 작가가 되는 게 아니구나, 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작가는 고등학교를 중퇴하고 도서관에 묻혀 살며 읽고 글쓰는 일에 몰두했다. 이런 과정이 '글쓰는 뇌'를 만드는 데 반드시 필요하다고 말한다. 태어나면서부터 글쓰는 자질을 갖춘 사람은 없다. 글쓰는 능력은 후천적인 노력으로 만들어진다. 글은 엉덩이로 쓴다고 한다. 또한 글은 깊은 사유에서 나온다. 사유의 바탕이 없으면 감동을 주는 글이 생산되지 않는다. 표피적 생각을 담은 영혼 없는 글쓰기를 할 바에는 아예 연필을 들지 않는 게 낫다고 말한다. 한편으로는 글을 쓰기 위해서 아무 거나 끄적이는 데서 출발할 수밖에 없다. 전업작가가 될 생각이 아니라면 저자의 말에 너무 겁을 먹을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책에 나오는 작가의 청소년 시절 이야기를 읽으며 같은 시기의 내 모습이 오버랩 되었다. 나도 중학생 때까지는 글을 잘 쓴다는 칭찬을 자주 들었다. 초등학생이던 어느 해에는 내가 쓴 기행문의 원고지가 학교 게시판에 통째로 전시되어 어깨가 으쓱했던 기억이 난다. 중학생 때까지는 교내 백일장이 있으면 단골로 시상대에 섰다. 초등학생 때 쓴 일기의 내용은 주로 자작시로 되어 있었다. 다른 아이들은 부담스러워 한 일기 쓰기가 나는 재미있었다. 이사를 다니다가 그때 일기장을 분실한 게 무척 아쉽다. 지금 이렇게 매일 블로그에 뭔가를 끄적거리는 것도 어린 시절의 습관 탓이라 믿는다. 

 

중학교 3학년이 되고 입시 준비에 매몰되면서 책 읽기나 글쓰기는 차차 멀어져 갔다. 고등학생 때는 학업을 따라가느라 아예 엄두도 내지 못했다. 활동하는 작가들을 보면 대부분이 고등학생 때가 왕성한 독서욕과 함께 글쓰기에 매진한 시기였다. 이 책을 쓴 장석주 작가도 마찬가지다. 청소년 시기에 이미 유명 작가가 될 단초가 마련되는 것이다. 나는 고등학교 교과목 중에서 국어를 제일 좋아했지만 어쩐 일인지 이과를 선택했다. 당시 우리는 4:1 비율로 이과반이 많았다. 그런 흐름에 자연스레 휩쓸렸는지 모른다. 대학에서는 물리를 전공하게 되었으니 이과 마인드는 점차 글쓰기에서 멀어지게 하는 요인이 되었을 성 싶다.

 

지금 나는 블로그에 올리는 일기 정도의 글쓰기가 유일하다. 진부하고 졸렬한 수준이지만 이 책의 제목을 빌려 감히 '나를 살리는' 글쓰기라고 자부한다. 이나마의 글쓰기도 없었다면 현재의 나는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블로그는 누구에게 보여주기 위함이 아닌 오로지 나를 위한 글쓰기다. 내 수준에서의 자기 발견이며 자기 치유다. 동시에 자족의 즐거움도 얻는다. <나를 살리는 글쓰기>를 통해 다시금 나를 돌아보게 된 독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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