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위의단상 849

처남의 10주기

꼭 10년 전이었다. 강릉에 살고 있던 처남이 위독하다는 연락이 왔다. 평소 건강하고 활동적인 사람이었기에 설마 하는 심정으로 달려갔다. 처남은 병원 응급실에서 산소 호흡기로 연명하고 있었다. 미동도 하지 못하고 누워 있었다. 연구실에있다가 갑자기 숨이 막히며 쓰러졌다는 것이다. 병원에서는 병명도 원인도 모르고 있었다. 그러기를 며칠, 위험하다는 경고에도 불구하고 서울 중앙병원으로 이송하였다. 역시 응급실에 있으면서 종합 검진을 받았다. 의사들도 처음에는 원인을 모르겠다고 했으나 나중에는 급성 폐암으로 진단이 나왔다. 너무나 악화된 상태라 도저히 손을 쓸 수가 없다고 했다. 처음에는 손바닥에 글씨를 쓰며 의사 소통을 하기도 했으나곧 혼수 상태로 빠져 들었다. 가운으로 갈아입고 만났던 짧은 면회 시간, 귀..

길위의단상 2003.10.22

하느님은 유죄인가?

어제 저녁 미사는 특별했다. 강론 시간에 바오로딸 수녀님들이 연극을 보여 주었기 때문이다. 그 제목이 `하느님은 유죄인가`였다. 마침 어제가 전교 주일이었다. 바오로딸은 출판이나 미디어를 통해서 하느님의 말씀을 전하는 것을 소명으로 하는 수녀원이다. 가톨릭 신자가 된지 오래 되지는 않았지만 강론이 연극으로 대신된 것은 처음이었다. 그런 형식의 파격이 더욱 좋았다. 그런 파격이 주는 긍정적인 인상과 내용은 백 마디 말보다 훨씬 더 직접적인 감동을 주었다. 연극 내용은 다음과 같다. 神이 법정에 기소되었다. 검사와 검사 쪽 증인 두 명이 神을 고발한 것이다. 검사의 기소 이유는 세 가지이다. 첫째,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입을까 걱정하지 말라고 하면서 사람들을 현혹시킨 죄. 열심히 일해도 먹고 살까 말까 한 ..

길위의단상 2003.10.20

행복의 조건

나는 지금 행복한가? 글쎄다. 행복하다고 자신있게 말할 수가 없다. 그렇다고 불행하다고 여기는 것도 아니다. 약간은 어정쩡한 상태이지만 행복한 상태는 아니다. 때에 따라 강도가 다르기는 하지만 대체로 지금의 나는 불안하고 욕구 불만에 차 있다. 현실에 만족하지 못하고 세상 일이 내 뜻대로 되지 않는다고 불평하고 있다. 그리고 앞으로도크게 행복할 것 같지도 않다. 나의 바램대로 모든 일이 이루어지더라도 그것은 나의 개인적 성취일 뿐, 가난한 이웃을 외면하고 살 수는 없을 것 같아서이다. 한 끼 끼니를 걱정하는 이웃이 있는데 혼자서호의호식하는 것이 참된 기쁨이고 행복일 수는 없겠기 때문이다. 또어려운 형제를 못 본 척해 놓고 내가 어찌 편안히 잠들 수 있을까? 세상 사람들 살아가는게 다 그렇겠지 뭐 하는 소..

길위의단상 2003.10.18

마더 데레사 어록

貧者의 어머니, 마더 데레사 수녀님이 오는 19일에 시복된다고 한다. 종교의 경계를 넘어선 그분의 사랑 앞에서는고개가 숙여지지 않을 수 없다. 바오로딸 홈페이지에서 그분의 말씀 몇 가지를 옮겨 보았다. 그런데 그분과 관계된 일화 중에서 감명깊게 들었던 것은 임종하는 사람들의 종교를 최대한 존중해 주며 각자가 원하는대로 종교 의식을 치러 주었다는 것이다. 임종 순간에 힌두신을 부르든, 하나님을 부르든, 알라를 부르든 개인이 믿어왔던 신앙의 절대자에게 평화롭게 안길 수 있도록 보살펴 주었다고 한다. 어쩌면 가장 보수적일 수도 있는 가톨릭의 수녀님이 이런 열린 마음일 수 있다는 것이 놀랍기만 하다. 아래 글에서도 알 수 있지만 그분은 가장 가톨릭적인 분이시기에 더욱 그러하다. 주변에서 장례 의식 문제로 마찰이..

길위의단상 2003.10.14

塞翁의 지혜

< 북방의 국경 근방에 점을 잘 치는 늙은이(塞翁)가 살고 있었다. 하루는 그가 기르는 말이 아무런 까닭도 없이 도망쳐 오랑캐들이 사는곳으로 가버렸다. 마을 사람들이 위로하고 동정하자 늙은이는 "이것이 또 무슨 복이 될는지 알겠소" 하고 조금도 낙심하지 않았다. 몇달 후 뜻밖에도 도망갔던 말이 오랑캐의 좋은 말을 한 필 끌고 돌아오자 마을 사람들이 이것을 축하하였다. 그러자 그 늙은이는 "그것이 또 무슨 화가 될는지 알겠소" 하고 조금도 기뻐하지 않았다. 그런데 집에 좋은 말이 생기자 전부터 말타기를 좋아하던 늙은이의 아들이 그 말을 타고 달리다가 말에서 떨어져 다리가 부러졌다. 마을 사람들이 아들이절름발이가 된 데 대하여 위로하자 늙은이는 "그것이 혹시 복이 될는지 누가 알겠소" 하고 태연한 표정이었다..

길위의단상 2003.10.13

가을 불청객, 우울증

몇 해 전부터던가, 가을만 되면 우울증이 찾아왔다. 이 손님은 도둑 고양이처럼 살금 살금 스며 들어와서는 아차 하고 알아챌 때에는 벌써 나는 포로가 되어 버렸다. 가을의 정점이 되면 내 가슴은 갈갈이 찢어져 찬 바람이 제 멋대로 불어 지나가고 내 마음은 모랫바람 날리는 사막이 된다. 무기력과 절망 - 이런 증상에 한참을 시달려야 한다. 내가 개인주의적 성향이어선지 이 시기가 되면 더욱 자폐적이 되어 버린다. 자신이 만든 고치 속으로 숨어 버린다. 사람들 만나는 것도 싫고, 세상도 싫고 그렇다고 자신을 긍정하지도 않으면서 자신의 작은 성 안에서 웅크리고 있다. 그 성은 따스하지도 않다. 역시 찬 바람 불기는 마찬가지다. 이 때는 안과 밖으로 호되게 시련을 당하는 시기이다. 온 세상의 고통을 혼자 짊어진 듯..

길위의단상 2003.10.11

산다는게 뭔지

가을은 떠나가는 계절인가 보다. 일주일 사이에 지인 세 사람의 부음을 들었다. 오늘 새벽에는 친구의 장례 미사에 다녀왔다. 앞 자리에 앉은 검은 상복을 입은 가족들의 처진 어깨가 더욱 슬펐다. 지금까지도 기분이 우울하고 스산하다. 나도 언젠가는 앞자리에 앉아 가까운 이를 떠나 보내는 이별 의식을 치러야 하리라. 그리고 또 언젠가는 나 자신이 이 의식의 주인공이 되어야 하리라. 나는 언젠가는 죽어야 할 존재이다. 가장 분명한 이 사실을 또 대부분 가장 무시하면서 살아가고 있다. 마치 이 지상에서 영원히 살아갈 듯이 말이다. 늘상 입버릇처럼 하는 말이지만 산다는게 뭔지 정말 모르겠다. 이런 걸 보면 뭘 얻었다고 기뻐하고, 뭘 잃었다고 슬퍼할 이유가 전혀 없을 것 같은데 그러나 일상으로 돌아온나는 이내 과거의..

길위의단상 2003.10.07

삼보일배 하면 기독교인 아니다

오늘 인터넷 신문 오마이뉴스에 이런 기사가 실렸다. 기사 전문은 다음과 같다. 제목; 삼보일배 하면 기독교인 아니다 전북 기독교교회협의회(회장 최희섭 목사)는 6일 "기독교 이름으로 삼보일배(三步一拜)를 해서는 결코 안되며 기독교 단체는 삼보일배에 참여하고 있지 않다"고 주장했다. 전북지역 14개 시.군 기독교회로 구성된 협의회 대표 8명은 이날 오전 전북도청 기자실에서 기자회견을 하는 자리에서 "불교 의식인 삼보일배는 기독교 교리와 성서에 위배되는 행위"라면서 "개인 자격으로 참여하고 있다면 그 사람은 이미 기독교인이 아니며 기독교인일 수 없다"고 말했다. 이들은 또 "언론은 앞으로 기독교가 삼보일배에 참가했다는 보도를 삼가 주기를 바라며 기독교인은 반대의사를 표현할 때 신앙 양심에 따라 하나님의 말씀..

길위의단상 2003.10.06

머나먼 길

길은 멀고도 험하다. 얼마나 많은 시간이 흘러야 얼마나 많은 고통의 강을 건너야 한 사람의 인간으로 설 수 있을까? 그 대답을 누가 알 수 있을까? 마음을 비운다고 하면서 도리어 점점 더늘어가는 욕심들. 세월따라 내 가면은 덧칠이 더해져 자꾸만 두꺼워져 가고 이젠 희망도 사그러져라. 시간은 나를 구원할 수 없으니 몇 억 겁의 세월이 나를 요만큼 밀어왔으니... 무슨 물건인지 모르는 이 마음 하나 다스리는 것이 천하를 구하는 것보다 더 힘들구나. 내가 붙들고 있는 이 허상은 무엇인가? 쓰레기더미 속에서 찾아낸 쓰레기로 쓰레기 성을 쌓아놓고 나는 싸운다. 나에게 오지 마라. 내 보물 건드리지 마. `놓아라!` 서릿발같은 선승의 고함 소리 나를 내리치거라.

길위의단상 2003.09.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