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 10

한 장의 사진(34)

'洛山寺記念 / 67. 7. 23' 올해가 2022년이니 55년 전 여름에 찍은 사진이다. 장소는 낙산해수욕장의 의상대 앞이다. 앞줄 맨 왼쪽의 교복을 입고 있는 학생이 나다. 그해 여름 아버지가 근무하시던 면사무소 직원들과 이장분들이 피서 여행을 동해안으로 갔는데 아버지는 나를 동행시켰다. 나는 그때 중3이었고 막 여름방학에 들어간 참이었다. 고등학교 입시 준비하느라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때였지만 머리를 식힐 겸 바닷바람을 쐬고 오자고 아버지가 권했고, 나는 군말 없이 따라나섰다. 이 사진을 볼 때마다 실소가 일면서 고개를 갸웃하게 된다. 어떻게 어른들 가는 여행에 낄 생각을 했을까. 동료들 여행에 자식을 데리고 간 아버지도 그렇지만 졸래졸래 따라간 나도 이해가 안 된다. 중3이면 가족끼리 여행을 하..

길위의단상 2022.08.24

코로나 미사

망부(亡父)의 41주기를 맞아 성당에서 연미사를 드리다. 그날도 이렇게 추웠을까. 사고를 당하시고 한밤이 지난 후 열 시간이 넘어서야 가족에게 비보가 전해졌다. 수업을 마치고 나왔다가 무심코 받은 수화기 너머의 떨리는 목소리는 청천벽력이었다. 서둘러 고향에 내려갔을 때까지도 아버지는 그 자리에 누워 계셨다. 그 뒤로 40년이 넘는 세월은 많은 아픔의 흔적을 지웠다. 이제는 짧은 시간의 종교 형식 속에서 아버지를 추억할 뿐이다. 가끔 꿈에 어지러운 모습으로 나타나셔서 괴로웠는데, 언젠가 환히 웃는 모습을 보여주신 뒤로는 꿈에서도 뵐 수 없다. 아버지, 그 나라에서는 편히 쉬십시요~ 코로나 때문에 미사 풍경도 많이 달라졌다. 드문드문 앉도록 지정 자리가 있고, 마스크는 당연히 필수다. 성가도 부르지 않는다...

사진속일상 2020.12.04

꿈에서 아버지를 뵙다

새벽 꿈에서 돌아가신 아버지를 만났다. 한적한 다리 위였다. 갑자기 한 사람이 옆에 다가왔다. 얼굴을 보니 아버지였다. "아버지지예? 아버지가 맞지예?" 아버지는 옅은 미소를 띠시며 고개를 끄덕이셨다. 나는 아버지 품에 안겨 울었다. "아버지, 잘못했어요. 죄송해요. 살아계실 때 다정하게 말 한마디 해 드리지 못하고...." 아버지는 아무 말이 없으셨다. 따뜻하게 나를 껴안아 줄 뿐이었다. 나는 반가워서 계속 흐느꼈다. 아버지는 흰색의 깔끔한 여름옷을 입고 계셨다. 얼굴은 살이 찌시고, 표정은 없었지만 밝았다. 오래전 꿈에서는 항상 병약한 모습으로 나타나셔서 마음이 아팠었다. 고맙고 안심이 되었다. 그런 생각을 하는 찰나에 잠이 깼다. 무척 생생한 꿈이었다.

길위의단상 2016.07.02

아배 생각 / 안상학

뻔질나게 돌아다니며 외박을 밥먹듯 하던 젊은 날 어쩌다 집에 가면 씻어도 씻어도 가시지 않는 아배 발고랑내 나는 밥상머리에 앉아 저녁을 먹는 중에도 아배는 아무렇지 않다는 듯 - 니, 오늘 외박하냐? - 아뇨, 올은 집에서 잘 건데요. - 그케, 니가 집에서 자는 게 외박 아이라? 집을 자주 비우던 내가 어느 노을 좋은 저녁에 또 집을 나서자 퇴근길에 마주친 아배는 자전거를 한 발로 받쳐 선 채 짐짓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 야야, 어디 가노? - 예....., 바람 좀 쐬려고요. - 왜, 집에는 바람이 안 불다? 그런 아배도 오래 전에 집을 나서 저기 가신 뒤로는 감감 무소식이다. - 아배 생각 / 안상학 통지표를 들고 아버지 계신 사무실로 달려갔다. 일제 시대 때 지어진 건물 뒤편 독립된 방에 아버지..

시읽는기쁨 2015.03.20

연장통 / 마경덕

장례를 치르고 둘러앉았다. 아버지의 유품을 앞에 놓고 하품을 했다. 사나흘 뜬눈으로 보낸 독한 슬픔도 졸음을 이기진 못했다. 아무 짝에도 쓸모없는 나무상자는 관처럼 무거웠다. 어서 짐을 챙겨 떠나고 싶었다. 차표를 끊어둔 막내는 자꾸 시계를 들여다봤다. 이걸 어쩐당가, 마누라는 빌려줘도 연장은 안 빌려 준다고 해쌓더니.... 엄니는 낡은 상자를 연신 쓰다듬었다. 관 뚜껑이 열리듯 연장통이 열리고 톱밥냄새가 코를 찔렀다. 술과 땀에 절은 아버지, 먹통, 끌, 대패, 망치를 둘러매고 늙은 사내가 비칠비칠 걸어나왔다. 몽당연필을 귀에 꽂은 아버지, 대팻밥이 든 고무신에서 고린내가 풍겼다. 자식 농사만은 대풍을 거두셨다. 망치는 부산으로, 톱은 서울로, 줄자는 울산, 말라붙은 먹통은 분당으로, 아버지는 그렇게 ..

시읽는기쁨 2014.08.08

아버지의 일기장

만화가 박재동 선생의 부친이 쓴 일기를 선생이 펴냈다. 선생의 부친은 초등학교 교사로 재직하던 중 건강 문제로 젊은 나이에 퇴직한 뒤 아내와 함께 만화방, 문방구, 떡볶이 장사를 하며 자식 셋을 길렀다. 전 생애가 매일매일의 생계를 걱정해야 하는 궁핍의 연속이었다. 부친은 1971년부터 세상을 떠난 1989년까지 매일 일기를 썼는데, 질병의 고통, 아내에 대한 연민, 자식에 대한 부정(父情), 꿈을 이루지 못한 남자의 회한 등이 진솔하게 담겨 있다. 선생의 부친은 특별한 것 같지만, 일반적인 우리들의 아버지 모습이기도 하다. 우리 시대의 아버지는 겉으로는 엄하고 냉정해 보였지만 내심은 그렇지 않았다. 뒷날 아버지의 마음을 알게 되면 우리가 알았던 아버지가 아버지의 전부가 아니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선..

읽고본느낌 2014.05.28

한 장의 사진(14)

추석 차례를 지낸 날 밤, 돌아가신 아버님 꿈을 꾸었다. 휠체어에 앉으신 아버님은 의기소침한 채 기력이 없으셨다. 꿈 내용은 이랬다. 어머니와 내가 집에 새 냉장고를 들여놓았는데 아버지와는 상의를 하지 않았다. 무시를 한 것이다. 그것이 아버지 마음을 서운하게 한 것 같다. 나는 아버지에게 가서 죄송하다고 말씀 드렸다. 아버지는 굳은 얼굴에 변화가 없으셨고 알았다, 라고만 하시고 고개를 돌리셨다. 무척 쓸쓸한 표정이어서 마음이 아팠다. 아버지는 꿈에서 늘 처량한 모습으로 나타나신다. 지금은꿈이 뜸하지만 여러 해 전에는 아버지 꿈을 자주 꾸었다. 꿈은 대동소이했다. 비를 흠뻑 맞고 후줄그레한 모습을 보이시거나, 정신이 온전치 못한 모습이셨다. 행방불명된 꿈도 자주 꾸었다. 꿈속에서 아버지는 항상 힘들어하시..

길위의단상 2010.09.25

아버지의 그늘 / 신경림

툭하면 아버지는 오밤중에 취해서 널브러진 색시를 업고 들어왔다, 어머니는 입을 꾹 다문 채 술국을 끓이고 할머니는 집안이 망했다고 종주먹질을 해댔지만, 며칠이고 집에서 빠져나가지 않는 값싼 향수내가 나는 싫었다 아버지는 종종 장바닥에서 품삯을 못 받은 광부들한테 멱살을 잡히기도 하고, 그들과 어울려 핫바지춤을 추기도 했다, 빚 받으러 와 사랑방에 죽치고앉아 내게 술과 담배 심부름을 시키는 화약장수도 있었다. 아버지를 증오하면서 나는 자랐다, 아버지가 하는 일은 결코 하지 않겠노라고 이것이 내 평생의 좌우명이 되었다, 나는 빚을 질 일을 하지 않았다, 취한 색시를 업고 다니지 않았고, 노름으로 밤을 지새지 않았다, 아버지는 이런 아들이 오히려 장하다 했고 나는 기고만장했다, 그리고 이제 나도 아버지가 중풍..

시읽는기쁨 2009.05.13

한 장의 사진(6)

아버님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는 우선 엄하고 무섭다는 것이다. 내 기억창고에는 대부분 이처럼 부정적인 것들이 저장되어 있다. 고맙고 좋았던 일도 많았을 텐데 왜 그런 것들은 지워지고 아픈 이미지들만 남아있는지 도무지 알 수 없는 일이다. 아버지는 자식 사랑이 유별하셨다는데 장남인 나에게는 늘 엄한 아버지로 각인되어 있다. 십 년 아래인 막내는 아버지의 사랑을 귀찮을 정도로 듬뿍 받고 자랐다. 약주라도 드시고 퇴근하신 날이면 막내는 도망가고 아버지는 쫓아다니는 숨바꼭질을 즐기셨다. 그런 것이 우리들에게는 재미있는 구경거리였다. 나에게는 공부에 대한 기대가 엄청나게 높으셨다. 초등학교 다니던 때, 아버지가 퇴근하실 때 내 책 읽는 소리가 들리지 않으면 그날 저녁 집 분위기는 냉동고로 변했다. 그래서 어머니는 ..

길위의단상 2006.08.18

아버지 / 윤재철

뇌졸증으로 쓰러져 의식이 점차 혼미해지면서 아버지는 응급실에서 중환자실로 옮기셨다 거기서 아버지는 몸부림치며 집으로 가자고 소리쳤다 링거 주삿바늘이 뽑히고 오줌주머니가 떨어졌다 남자 보조원이 아버지의 사지를 침대 네 귀퉁이에 묶어버렸다 나중에는 의식이 없어 아무 말도 못하면서 짐승처럼 몸부림만 쳤다 팔목이며 발목이 벗겨지도록 집으로 가자고 고향도 아니었다 집이나마나 창신동 골목길 셋방이었다 - 아버지 / 윤재철 작년 가을, 장인 어른이 돌아가셨다. 병원을 오가며 암 치료를 받으시다가 생의 마지막 날들은 집에서 보내셨다. 당신의 소원대로 당신의 방, 당신의 침대에서 가족이 지켜보는 가운데 숨을 거두셨다. 임종을 지켜본 모두들 평안한 마지막이었다고 말했다. 만약 병원에 있었더라면 목에 구멍을 뚫고 호스를 꽂..

시읽는기쁨 2005.10.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