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읽는기쁨

사랑의 지옥 / 유하

샌. 2012. 3. 19. 17:12

정신없이 호박꽃 속으로 들어간 꿀벌 한 마리

나는 짖궂게 호박꽃을 오므려 입구를 닫아 버린다

꿀의 주막이 금세 환멸의 지옥으로 뒤바뀌었는가

노란 꽃잎의 진동이 그 잉잉거림이

내 손끝을 타고 올라와 가슴을 친다

그대여, 내 사랑이란 그런 것이다

나가지도 더는 들어가지도 못하는 사랑

이 지독한 마음의 잉잉거림

난 지금 그대 황홀한 캄캄한 감옥에 닫혀 운다

 

     - 사랑의 지옥 / 유하

 

어렸을 때 이런 장난 많이 했다. 그때는 호박꽃 속에 갇힌 꿀벌이 재미있었다. 그게 시인의 눈을 거치니 사랑과 결혼의 비유로 되었다. 정말 그럴듯하다.

 

사랑과 결혼이 뭘까? 불빛으로돌진하는 부나비처럼 남녀는 자신의 짝을 찾아 헤맨다. 그리고는 짝짓고 가정을 만들어 자식을 낳는다. 왜 꼭 그래야 하지? 지상의 피조물로서 유전자의 명령을 거역할 수는 없을 게다. 하늘은 달콤한 꿀을 마련해 놓았다. 그러나 꿀이 달콤할수록, 꿀의 단맛에 탐닉할수록, 그곳은 지옥이 될 수 있다. 좁은 호박꽃 안, 캄캄한 감옥에 갇혀 운다. 그곳이 감옥인 줄 모르면 황홀하고 행복할까?

 

그대여, 울지 마라. 사랑은 다 그런 게 아니겠는가. 꿀의 유혹에 끌린 그대의 잘못이 아니니, 사랑하고 아프고, 눈물을 흘리며, 그대는 인간으로서 성장의 길을 걸어간다. 아프지 않고 배울 수는 없다. 그것이 인간의 굴레면서, 또한 초월하기 위해 감당할 수밖에 없는 짐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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