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읽는기쁨

사람이 사람에게 / 홍신선

샌. 2012. 3. 14. 09:29

2월의 덕소 근처에서

보았다 기슭으로 숨은 얼음과

햇볕들이 고픈 배를 마주 껴안고

보는 이 없다고

녹여주며 같이 녹으며

얼다가

하나로 누런 잔등 하나로 잠기어

가라앉은 걸.

입 닥치고 강 가운에서 빠져

죽는 걸.

 

외돌토리 나뉘인 갈대들이

언저리를 둘러쳐서

그걸

외면하고 막아주는

한가운데서

보았다,

강물이 묵묵히 넓어지는 걸.

 

사람이 사람에게 위안인 걸.

 

     - 사람이 사람에게 / 홍신선

 

피정에 다녀온 아내에게서 안타까운 얘기를 들었다. 옆에 있던 한 분이 2박3일 내내 울기만 하더란다. 나중에 들은 사연은 이랬다. 서울대학교를 졸업하고 미국으로 유학을 보낸 딸이 갑자기 죽었다는 연락이 왔다. 사고사였다. 지난 10월의 일이었다. 아들은 고3 수험생으로 수능을 앞두고 있어 누나의 죽음을 알리지도 못했다. 대학에 입학한 지금까지도 숨기고 있다고 한다. 그 심정이 오죽할까. 그동안 마음 놓고 울지를 못해서, 이번 기회에 울고 싶어 피정에 들어왔다는 슬픈 사연이었다.

 

이분은 실컷 울고, 자신의 아픔을 고백하면서, 마음이 많이 안정된 모양이다. 특히 자신보다 더 불행한 사람의 얘기를 들으면서 동병상련의 위안을 받았다고 한다. 인생을 살면서 유난히 힘든 고통의 멍에를 매야 하는 사람이 있다. 나에게 그런 고통이 찾아오지 않았다고 감사하며 다행이라고 할 수 있을까. 어쩌면 그분들이 내가 감당해야 할고통을 대신 감내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나'와 '너'는 서로 분리된 게 아니다. 이 시에 나오는 얼음과 햇볕처럼, 갈대처럼, 서로가 서로를 껴안고, 녹여주고, 막아줘야 할 존재다. 사람이 사람에게 위안이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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