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고본느낌

이것이 인간인가

샌. 2012. 2. 16. 09:43

프리모 레비는 1919년 이탈리아 토리노에서 태어났고, 1941년 토리노 대학 화학과를 최우등으로 졸업했다. 유대계였던 그는 제2차 세계대전 말 파시즘에 저항하는 지하운동에 참여하다 체포당해 아우슈비츠로 이송되었고, 제3수용소에서 노예보다 못한 나날을 보내다가 종전을 맞았다. <이것이 인간인가>는 그가 아우슈비츠에서 '174517'로 지낸 10개월간의 체험을 기록한 것이다.

 

홀로코스트를 고발하는 작품을 여럿 읽었지만 <이것이 인간인가>는 그중에서 가장 뛰어나다. 이 책은 단순히 대학살의 현장을 증언하는 차원을 넘어 인간이 얼마나 잔인하고 광기에 사로잡힐 수 있는지에 대해 근원적인 질문을 한다. 또한 강제수용소의 상상하기조차 어려운 폭력으로 인간이 얼마나 타락하고 존엄성을 상실하는지 냉정하게 묘사하고 있다. 이 책을 읽다 보면 인간 존재의 본질에 대해 의문을 가지지 않을 수 없다. 인간이라면 도저히 할 수 없는 일이 일어났고, 더 무서운 건 다시 이런 일이 벌어질 수도 있다는 사실이다. 인간은 기본적으로 잔인하고 이기적이고 우둔한 게 아닐까. 레비는 궁핍과 지속적인 육체적 고통 앞에서 사회적 습관과 선한 본능이 모두 침묵에 빠지는 걸 경험했다. 책 제목 '이것이 인간인가'는 이런 게 바로 인간의 본성이라고 강변하는 것 같다.

 

당시 아우슈비츠에 수용된 사람들의 평균수명은 고작 3개월이었다. 대부분은 즉석에서 가스실로 보내졌고, 젊고 건강한 사람은 노동현장에 투입되었지만 그들도 쇠약해지면 '선발'을 피할 수 없었다. 수용소는 인간성을 말살시키는 실험실이었다. 이렇게 해서 아우슈비츠에서만 100만 명이 넘게 죽었고, 전체 수용소에서 희생된 사람은 600만 명이 넘었다. 인종차별과 유대인 절멸정책이 낳은 인류사 최대의 참극이었다. 그런 와중에 레비가 10개월간 버텼다는 것은 거의 기적에 가까운 일이었다. 그는 생환하여 많은 작품을 쓰며 활동했지만 1987년 4월에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40년이 지났음에도 불안과 절망이 끝내 그를 무너뜨렸다.

 

600만의 대학살을 저지른 범죄자들은 일부 미친 나치당원이나 SS대원만이었을까. 아니다. 평범하고 선량해 보이는 일반인들도 무수히 여기에 가담했다. 집단적 광기에 빠진 시스템 속에서 인간이 얼마나 타락할 수 있는지를 수용소는 잘 보여준다. 성찰과 비판이 없는 지식, 학문, 이데올로기, 양심, 심지어는 신앙마저도 독으로 변한다. 홀로코스트는 1940년대의 특수한 상황에서 빚어진 특별했던 비극이었을까. 지금 이 시대가 홀로코스트적 상황과 얼마나 다르다고 할 수 있을까. 당시에 사람들은 자신들이 무슨 일에 이바지하고 있는지 전혀 알지 못했다. 그것은 지금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악'의 체제 속에서는 단지 선량하다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이것이 우리가 끊임없이 고민하고, 성찰하고, 의문을 가져야 하는 이유다.

 

프리모 레비의 '이것이 인간인가'라는 시를 옮긴다.

 

오늘도 저녁이면 따뜻한 집으로 돌아와

다정한 가족들과 맛있는 음식을 나누며

언제나 즐겁고 행복한 삶을 누리는 당신

하지만 바로 그 순간에도

행복이라는 말조차 모른 채 진흙탕 속을 뒹굴며

오직 빵 한 조각을 위해 싸우다가

'예스, 노'라는 말 한마디 때문에 생사가 오가는

그런 사람들이 있다

생각해 보라, 이것이 과연 인간인지....

한 올의 머리카락이나 이름도 없이

무뇌아나 한 겨울 개구리처럼 텅 빈 동공과

생리마저 얼어붙어버린 그런 여자들이 있다

생각해 보라, 이것이 과연 인간인지....

이것이 무얼 의미하는지

당신 스스로 깊이 깨닫는 사람이 되기를 바란다

물론 당신 가족들도 그렇게 되기를 바란다

따뜻한 집에 있을 때든, 혼자 길을 걸을 때든

잠자고 있을 때든, 깨어있을 때든

항상 가슴 깊이 반추하며 살아가기를 바란다

그러지 않으면 당신 가족은 용서받지 못할 것이며

결국

당신도 자식들로부터 버림 받은 아버지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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