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위의단상

그랜드 캐니언에 가고 싶다

샌. 2008. 3. 24. 10:51

EBS TV에서 그랜드 캐니언(Grand Canyon)를 소개하는 다큐 프로를 우연히 보았다. 그랜드 캐니언이 나에게 꼭 가보고 싶은 곳으로 새겨진 것은 고등학교 시절이었다. 그때 국어 교과서에 지금은 이름도 기억나지 않지만 어느 분이 쓴 그랜드 캐니언[그랜드 캐년] 기행문이 실렸다. 그 기행문이 준 감동 때문에 나는 그때 어른이 되면 언젠가는 꼭 그랜드 캐니언에 가 보겠다고 스스로에게 다짐을 했다. 고등학교를 졸업한지도 어언 40 년이 되어가는 아직까지 그 꿈이 이루어지지 않았지만 그랜드 캐니언은 아직도 내 마음 속에 살아있다. TV 프로를 보면서 가슴이 뛰는 걸 보니 그 바람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나는 해외여행에 대해 별 흥미가 없다. 특히 단체로 가는 패키지 관광여행은 더욱 그렇다. 동료들을 보면 이런저런 팀을 만들어 잘도 나가는데 난 아직 한번도 그런 모임에 낀 적이 없다. 가이드를 따라 바쁘게 쫓아다니는 주마간산식의 여행은 나에게 별로 맞지가 않는다. 많은 경비를 들여 그런 식의 여행을 하고 싶지는 않기 때문이다. 그리고 또 하나의 이유는 여행지가 대부분 내 취향과 맞지 않는다. 역사 유적이나 휴양지, 또는 문명의 화려함에는 별 관심이 없다. 내년 겨울에 히말라야 트래킹을 계획중인 팀이 있는데 거기에는 같이 하고 싶다.

언젠가 내가 하고 싶은 여행의 목록을 적어본 적이 있었다. 너댓 가지가 머리에 떠올랐는데, 산티아고 길 걷기, 사막 횡단, 알래스카에서 오로라 보는 지프 여행과 백야 체험, 일본 야쿠시마의 최고령 삼나무 보러 가기, 그리고 그랜드 캐니언이었다. 그 중에서 가장 오랫동안 내 마음을 차지하고 있던 것이 바로 그랜드 캐니언이다. 그리고 그랜드 캐니언이 내 마음에 찍힌 것은 바로 국어 시간에 읽었던 감동 때문이다. 글 한 줄이 인생을 바꾼다고 하지만 나같은 경우는 평생을 잊지 못할 장소로 낙인 찍은 셈이다.

그랜드 캐니언에 가면 최소한 일 주일 이상은 머물고 싶다. 20억 년 지구 역사가 쌓여있는 지층과, 500만 년에 걸쳐 침식되었다는 대협곡의 장엄한 아름다움을 직접 몸으로 느껴보고 싶다. 가능하다면 1000여 m 아래의 콜로라도 강까지 내려가 보고 싶다. TV에 나온 설명으로는 다섯 시간이나 걸리는 험한 길이라는데, 발 한 걸음이 지구 역사 2만 년을 거슬러가는 것과 같다고 한다. 그때는 대자연의 경이로움에 숨이 막힐 것 같다.

시간이 되면 그랜드 캐니언에서 멀지 않다는 요세미티 국립공원에도 들러 수령이 2000년이 넘는다는 자이언트 세콰이어도 만나보고 싶다. 그리고 요세미티의 웅장한 산악 지형을 따라 하이킹도 해보고싶다. 그랜드 캐니언과 요세미티를 약 2주일 여정으로 갈 수 있다면 좋겠다. 물론 그런 패키지 상품은 없을 것이고 개인적으로 일정을 짜야 할 것이다. 그런 여행 경험이 거의 없는 나로서는 모든 것이 만만찮을 것이다. 그러나 거기에 가 있다는 상상만으로도 내 마음은 들뜬다.

고등학생일 때 감동적으로 읽었던 그 기행문을 다시 읽어보려 해도 찾지를 못하겠다. 그러나 몇 번 인터냇을 클릭하다가 그만 둔 것은 내 가슴 속에 저장된 감동이 다시 읽음으로써 실망으로 바뀔까 적이 걱정되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것은 마치 옛사랑 만나기가 두려워지는 것과 같다. 혹 그랜드 캐니언도 그렇지는 않을까? 환상이 너무나 커서 실제로 가서 보면 실망스럽지나 않을까? 비록 그러하더라도 그랜드 캐니언에는 언젠가는 꼭 가 볼 것이다. 40 년의 기다림이 가능하면 빨리 이루어졌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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