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고본느낌

우아하게 가난해지는 방법

샌. 2011. 12. 19. 07:43

<우아하게 가난해지는 방법>, 제목에 끌려 이 책을 읽었다. 알렉산더 폰 쇤부르크라는 독일인이 썼는데 잘 나가는 언론인이었다가 한순간에 실업자로 전락한 자신의 경험에서 깨우친 내용이 토대가 되어 있다. 경제적 고통 앞에서 정신적으로 무너지지 않고 의연하게 사는 방법을 모색한 결과다. 단순 소박한 삶의 가치를 강조하는 여느 책들과 비슷하지만, 관념적이 아닌 실제 생활 예가 많이 나온다. 가난을 궁핍이나 두려움이 아니라 윤리적 미학으로 승화시키고 있는데, 이것이 공감을 얻는 것은 저자 자신이 그런 삶을 살고 있기 때문이다.

'우아함'과 '가난'은 서로 상충하는 개념인 것 같지만, 저자는 도리어 가난해야 우아하게 살 수 있다고 말한다. 돈 없이도 부유한 인생을 사는 것은 가능한 일이고, 오히려 돈이 많을 때보다 더 쉬운 일이라는 것이다. 중요한 건 삶에 대한 올바른 태도다. 윤택한 삶은 많은 돈이나 물건을 쌓아두는 것과는 무관하다. 저자는 돈이 도리어 행복의 걸림돌이라고 말한다. 가난은 천박함으로 떨어지는 것을 막아주고 우리 삶의 우아함을 되찾아주는 기회가 된다.

욕심을 버릴 수 있는 능력, 다른 사람의 생활 양식을 자신의 척도로 삼지 않는 자주성, 가난이 불행이 아니라 우리의 생활방식을 세련되게 할 기회라는 인식이 우리를 행복으로 이끈다. 저자는 '포기의 기쁨'을 여러 차례 강조한다. 삶의 군더더기, 불필요한 것을 포기하고 자신에게 진정으로 소중한 것을 알고 즐기게 되면 기쁨을 극대화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저자는 자동차, 외식 문화, 휴가 여행, 문화생활 등 현대 사회의 구성 요소들에 날카로운 비판을 가한다.

이제 풍요의 시대는 지나갔다. 지금과 같은 자본주의 체제는 조만간 붕괴할 것이다. 어쩌면 대공황이 우리를 찾아올지 모른다. 전 세계적으로 사람들의 삶은 궁핍해지고, 식량과 에너지를 둘러싼 갈등과 전쟁의 소용돌이에 세계는 휩싸일 것이다. 그러나 저자는 자원의 고갈이나 복지의 후퇴가 꼭 분배의 싸움으로 끝나라는 법이 어디 있느냐며 묻는다. 오히려 전혀 예상하지 못한 결과를 낳을 수도 있다고 한다. 넘치는 풍요의 시대에는 도외시 되었던 미덕이 결핍의 시대에 다시 살아날 것이라고 본다. 위기는 또 다른 기회다. 개인적으로든 세계적으로든 이런 위기에 대한 낙관이 이 책의 특징이다.

이런 종류의 책을 가난한 자의 자기 위안이라고 깎아내려서는 안 된다. 삶의 근본을 성찰한 사람들은 하나같이 자발적 가난에 대해 말한다. 책에 나오는 내용 중에서 몇 문장을 골라 보았다.


- 듣기 좋은 말로 행복을 이야기하는 진부한 감언이설을 뒤쫓는 사람은 스스로를 불행하게 만들기 십상이다. 진정한 가난은 물질적인 것의 결핍이 아니라, 건강이나 아름다움이나 부유함, 무엇을 좇든지 간에 완벽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비롯된다.

- 부유해질 수 있는 두 가지 가능성이 있다. 첫 번째 가능성은 마음에 품고 있는 모든 소원을 성취하려고 애쓰는 것이다. 악착같이 일을 하며 누리고 싶은 일들을 꿈꾼다. 그러다 마침내 실제로 소원을 이루게 되어도 행복해지지 않는다고 확실히 말할 수 있다.

- 우리의 삶을 아름답게 하기보다는 황폐하게 만들 뿐인 무익한 유혹에 맞서서 우리 자신을 지킬 때에만 풍성한 삶이 가능해진다. 진정으로 부유해지고 싶은 사람은 적어도 일부나마 독자적인 태도를 회복하고자 용기를 내야 한다. 좀 더 나은 삶을 위한 비결은 독자적인 생활양식이다.

- 존재의 불안에 억눌리지 않고, 굶주림에 시달리지 않고, 집세를 지불하고 진정으로 중요하게 여기는 일을 할 수 있는 한, 얼마든지 행복하고 우아한 삶을 영위할 수 있다. 그러려면 부자가 되려는 꿈을 꾸지 않아야 한다. 그런 꿈을 꾸는 경우에는 현재의 상황과 꿈꾸는 상황 사이의 불일치가 영원한 불만족의 근원이 된다.

- 행복은 소지하고 있는 은행 계좌의 개수와는 무관하다. 돈이 많다고 해서 특별히 행복해지지는 않는다. 많은 부자들은 이런 사실을 잘 알고서 '소박한 삶'을 갈망한다. 그러나 지나친 풍요에서 아무리 벗어나려고 노력할지라도 '소박한 삶'에 대한 동경은 성취되지 못한다. 그와 반대로 가난한 사람은 지나친 풍요에서 벗어나 우아한 삶을 영위하기 위해서 특별히 뜻을 세워 힘들게 노력할 필요가 없다. 상황을 쫓아가기만 하면 된다. 그러나 부자들은 돈을 꽉 움켜쥐든 돈에서 벗어나려고 노력하든 상관없이 언제까지나 돈의 포로 신세를 면할 수 없다. 자본주의가 아무리 그렇지 않다고 우리를 설득하려 할지라도, 부자들이야말로 진짜 가난한 사람들이다. 부자들은 많은 돈을 벌기 때문에 부러움을 사지만, 그들이 실제로 받아 마땅한 것은 동정심이다.

- '남들이 하는 대로 따라 하려는' 충동은 스스로를 불행하게 만드는 확실한 지름길 가운데 하나다. 이것은 소득이 많든 적든 상관없이 누구에게나 해당된다. 자신의 분수에 넘치는 일을 쫓아가려고 애쓰는 경우에는, 남들과의 차이를 극복하기는 커녕 오히려 불행해질 뿐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이면, 우리는 행복에 성큼 다가갈 수 있다.

- 겸손 없이는 진정한 행복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런데 겸손하기가 부자들에게는 무척 어렵다.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는 능력, 사회적인 신분과 관계없이 다른 사람들을 존중하는 능력은 대부분의 부자들에게 결여되어 있다. 이것이 진짜 핸디캡이다.

- 부자들보다 더 가난한 사람들이 있다면, 그것은 부유해지고 싶어 하는 가난한 사람들이다.

- 부는 욕구의 문제이다. 이른바 우리의 욕구라고 하는 것은 대부분 인위적으로 만들어졌으며, 심지어는 우리 본래의 욕구를 가로막는 경우가 많다는 사실을 인식하게 되면 누구나 부를 누릴 수 있다. 다만 경제가 선전을 통해 우리를 설득하려고 하는 것과는 조금 다를 뿐이다.

- 우리 가운데 대다수의 사람들은 지금까지보다 훨씬 더 적은 돈으로도 품위 있는 삶, 그야말로 호사스러운 삶을 누릴 수 있다. 우리가 본의 아니게 이른 전환점이 우리 생활의 질을 근본적으로 향상시킬 수 있다.

- 깊은 만족을 느끼게 하는 사물들은 돈으로 얻을 수 없다. 진정한 사치품을 잃은 경우에 이 세상의 어떤 보험 회사도 보상해 줄 수 없다. 손으로 직접 쓴 편지, 독특한 장서표, 여느 꽃가게에서 구입한 게 아니라 이따금 꽃을 꺾도록 허락하는 어느 노부인의 정원에서 선물받은 꽃다발, 화장품 가게에서 돈 주고 산 것이 아니라 손수 섞어 만든 향수, 수공업자가 직접 고안하고 제작한 물건, 눈 내리는 공원에서의 산책, 무더운 여름날 호수에서의 수영, 아버지가 쉰 번째 생신에 고이 보관하신 포도주 한 병 등.

- 지나치게 넘치는 삶은 피곤하고 권태로울 뿐 아니라 완전히 시대에 뒤떨어진다는 사실을 아직 파악하지 못한 가난한 부자들이 특히 동정을 받아 마땅하다. 그와 반대로 가난해지는 사람들은 선구자에 속한다. 결국 머지않아 우리 모두, 정말로 모두가 예전보다 한결 더 가난해질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 우아하고 침착하게 대처하는 법을 빨리 터득할수록 더욱 근심 걱정 없는 삶을 누리게 된다. 돈으로 해결할 수 없는 욕구를 품은 사람들만이 부자로 살 수 있다. 비록 은행 잔고가 줄어들지라도, 다행히 인생의 가장 아름다운 일들은 우리 곁을 떠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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