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나침반

장자[209]

샌. 2012. 6. 7. 07:56

자기 그림자가 두렵고 발자국이 싫어서

떨쳐버리려고 달리는 자가 있었다.

발을 들어 올리는 것이 더욱 잦아질수록

발자국은 더욱 많아지고

아무리 빨리 달려도

그림자는 몸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그는 아직도 느리다고 생각하여

더욱 빨리 달리며 쉬지 않았다.

드디어 힘이 빠져 결국 죽고 말았다.

그 사람은 그늘에 처하면 그림자도 쉬고

처함이 고요해지면 발자국도 그친다는 것을 알지 못한 것이다.

어리석음이 얼마나 심한 것인가?

 

人有畏影惡迹

而去之走者

擧足愈數

而迹愈多

走愈疾

而影不離身

自以爲尙遲

疾走不休

絶力而死

不知處陰以休影

處靜以息迹

愚亦甚矣

 

    - 漁父 2

 

이 비유를 읽으며 문득 이상의 '오감도'가 떠올랐다.

 

13인의아해가도로로질주하오

(길은막다른골목이적당하오)

제1의아해가무섭다고그리오

제2의아해가무섭다고그리오

제3의아해가무섭다고그리오

.

.

.

.

 

막다른 골목으로 질주하는 아해나 그림자를 떨쳐버리려고 쉬지 않고 달리는[疾走不休] 사람이나 비슷하게 느껴졌다. 이상의 아해도 제그림자가 무서워 저렇게 막무가내의 질주를 했지 않나 하는 생각도 든다.

 

공자가 어부에게 자신의 신세 한탄을 한다. 노나라에서 두 번이나 추방당했고, 위나라에서는 숨어다녔고, 송나라에서는 죽을 고비를 넘겼고, 진나라에서는 폭도들에게 쫓겼다. 도대체 왜 이런 고난을 받느냐는 질문에 어부가 이 멋진 비유로 대답한다. 당신의 어리석음이 얼마나 심한가? 그늘에서 쉬면 그림자도 쉬고 고요해지는 것을, 당신은 그림자가 두려워 열심히 달리고만 있다. 그게 당신의 모습이다.

 

많은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 비유다. 좁게는 공자의 행위에 대한 비판이지만, 넓게 보면 현대 문명과 현대인에게도 적용할 수 있다.우리는 과연 무엇을 위해 바쁘게 살아가고 있는가? 그림자를 떨쳐내기 위해 모두가 정신없이 달리기만 하지만 그럴수록 그림자는 몸에서 떨어지지 않는다. 더 빨리를 외치다가 결국은 힘이 빠져 죽고 만다. 이런 어리석음이 없다.

 

욕망에 휘둘려 앞으로만 달려가는 우리의 모습에 대한 풍자다. 욕망은 또 다른 욕망을 낳고 결국은 욕망의 노예가 된다. 이 세상이 욕망을 부추기고 있다. 경쟁 심리과 두려움을 교묘히 이용하며 사람들을 앞뒤 보지 않고 달리도록 유도한다. 그 속에서 사람들은 무엇을 위해 사는지도 모른 채죽음에 이르도록 숨가쁘게 헉헉대기만 한다.

 

장자의 해법은 간단하다. 그늘에 들어 쉬어라! 그치고[止], 쉬면[休], 평화는 저절로 찾아온다. 자신의 참된 본성을 지키면 사물이나 남들에게 얽매임이 없을 것이다. 자신을 돌아보지 않고 밖에서만 구하니 분주하기만 하고 근본에서 소외된다. 그늘에 들면 그림자가 없어지고, 가만히 있으면 발자취가 생기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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