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살이의꿈

소용없다

샌. 2011. 11. 3. 08:28

박목월 시인의 부인은 생전에 자식들이 속상하게 할 때마다 부채에 써놓은 글귀를 보며 마음을 달랬다고 전해진다. 부채에는 '소용없다'라는 글자가 적혀 있었다고 한다. 부인은 자식들이 말썽을 부릴 때면 부채를 펴서 자식들에게 보이고 스스로에게도 자경(自警)의 의미로 삼았던 것이다. 그분의 아들인 박동규 선생의 회고로는 어머니가 부채를 펴 보이면 조심해질 수밖에 없었다고 말한다.


부모와 자식 사이의 천륜을 어찌할까? 그러나 무엇이건 지나치면 병이 된다. 특히 어머니의 자식에 대한 사랑은 집착으로 변질되기 쉽다. 아이가 다 컸는데도 불구하고 정신적 탯줄을 끊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남의 얘기가 아니다. 아내는 딸을 시집보내고 나서부터 잠을 이루지 못한다. 병원 약이 아니면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 없다. 자식이 떠난 빈자리가 아내 가슴에 구멍을 뚫어 놓았다. 삼개월 간격으로 큰일을 두 번 치러야 하는데 앞이 걱정이다. 어느 집 엄마도 딸을 여의고 우울증에 걸려 정신과 치료를 받고 있다는 얘기를 들었다. 이 정도가 되면 모성도 극복해야 할 생물적 애착일 뿐이다.


어머니들의 자식 사랑에는 극진한 데가 있다. 남자들은 도저히 따라갈 수 없다. 다른 동물들도 새끼를 돌보는 모성은 인간에 못지않지만 성장한 뒤에는 냉정할 정도로 내쫓아서 독립시킨다. 동물세계에서는 스스로 서지 못하면 도태될 수밖에 없다. 오직 인간만이 끝까지 자신의 품에 넣고 지키려 한다. 결혼시킨 뒤에도 인간처럼 무한 서비스를 하는 종족은 없다. 그러나 너무 도에 넘친 부모의 보호와 간섭은 아이를 망치는 원인의 하나다. 온전한 성인으로 성장할 기회를 앗아간다. 약이 도리어 독이 되는 것이다.


박목월 시인의 부인이 '소용없다'로 스스로의 경계를 삼은 것은 자식을 향한 본인의 거역하기 힘든 본능에 대한 제동 장치가 아니었나 하는 생각을 한다. 브레이크 없는 자식 사랑은 위험하다는 걸 지혜로운 부모는 안다. 특히 우리나라 어머니들의 경우 자식에 대한 염려와 관심의 몇 분의 일이라도 자신을 위한 몫으로 돌릴 필요가 있다. 자식을 잘 키우는 게 나를 위하는 거라는 생각은 말자. 잘 키우려 애쓰기 전에 잘 키운다는 게 뭔지에 대한 진지한 성찰이 필요한 게 아닐까. 아내의 잠 못 드는 밤이 길어지고 있어 답답하면서 안타깝다. 올해가 지나가고 큰일이 마무리되어야 우리집 생활도 안정을 찾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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