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살이의꿈

할아버지는 무엇을 했나요

샌. 2011. 10. 13. 09:45

아침 3시 23분

나의 귀한 손자 손녀들이

나를 자도록 내버려 두지 않아

잠에서 깬다.

나의 귀한 손자 손녀들이

꿈속에서 내게 질문을 한다.

지구가 약탈당하는 동안 할아버지는 무엇을 했나요?

지구가 위태로울 때 할아버지는 무엇을 했나요?

계절이 바뀌지 못할 때

포유동물, 파충류, 새들이 모두 죽어갈 때

할아버지는 정말 무엇을 했나요?

민주주의가 짓밟힐 때

할아버지는 거리에서 저항했나요?

이전에

알고 있었을 때

할아버지는

무엇을 했나요?

 

<자연 그리고 인간 혼>이라는 책을 보다가 이 시를 만나 뜨끔했다. 생각과 말보다 행동이 중요하다는 걸 알지만 실천하지는 못하는 내 자신이 부끄러웠다. 강이 죽어가고, 정의가 짓밟히고, 지구가 약탈당할 때, 나는 무엇을 하고 있었는가? 먼 훗날 내 사랑스런 손자 손녀들이 “그때 할아버지는 무엇을 했나요?”라고 묻는다면 나는 뭐라고 대답할까? 꿈에서가 아니고 정말 그런 날이 올지도 모른다. 영화 ‘빠삐용’에서 사람을 죽이지 않았다고 항변하는 빠삐용에게 저승사자가 말한다. “네 말이 맞다. 그러나 너는 인간이 범할 수 있는 가장 큰 죄를 지었다. 그건 바로 인생을 낭비한 죄다.” 특별히 나쁜 짓을 한 게 아니다. 이웃이 고통 받고, 생명이 죽어갈 때, 나 역시 방관자로서 이 시대의 책임을 면하기 어렵지 않은가. 고개 숙인 빠삐용처럼 그 어떤 벌이 내려도 할 말이 없을 것 같다. 나 혼자 즐겁고 행복하다고 잘 사는 건 아닐 게다.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떨리고 두려워진다.

 

이 시를 쓴 사람은 드류 델링거(Drew Dellinger), 시의 제목은 ‘거대한 신성 계단(Hieroglyphic Stairway)’이라는 것 외에는 책에 아무 정보도 나와 있지 않다. 우리나라에는 거의 알려져 있지 않은 시인인 것 같다.

 

'참살이의꿈' 카테고리의 다른 글

우리는 낙오자가 아닌 거부자입니다  (0) 2011.11.04
소용없다  (1) 2011.11.03
풍랑이 없으면 풍어도 없다  (0) 2011.10.05
고독의 능력  (1) 2011.09.18
우리의 일상  (0) 2011.09.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