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고본느낌

사진, 예술로 가는 길

샌. 2011. 10. 29. 19:35

사진에 관한 내 기본 인식을 바꿔준 책이 한정식 선생의 <사진, 예술로 가는 길>이다. 카메라를 가지고 사진을 찍은지 30년이 넘었지만 사진이란 무엇인지, 사진의 의미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해 본적이 없었다. 사진이란 그저 기록이나 기념으로 남기기 위해 찍는 것으로 생각했다. 그러니 항상 그 수준이고 발전은 불가능했다.

책은 첫머리에서 '사진은 말이다'라는 명제로 시작한다. 사실 이 정의부터가 나에게는 충격이었다. 어찌 보면 당연한 것 같지만 조금만 생각해 보면 이 명제가 함축하고 있는 의미가 깊다는 걸 알 수 있다. 뒤에 나오는 '사진은 자연과 인생에 대한 자기 발언'이라는 것도 같은 뜻이다. 사진이 나의 말이고 발언이라는 사실을 명심한다면 어떤 사진을 찍어야 사람들이 관심을 가지고 쳐다보게 될까를 연구하고 고민하게 되는 건 당연하다. 이런 고민 없이 좋은 사진, 창조적인 사진은 만들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이 책은 사진을 잘 찍는 테크닉을 가르치지 않는다. 도리어 기존의 사진 원칙을 무시하라고 한다. 천편일률적인 사진 설명서와는 차원을 달리 하는 책이다.

선생은 고정관념과 상식을 깨뜨릴 것을 강조한다. 그래야 새로운 각도를 사물을 보게 되고 남이 보지 못하는 아름다움을 발견하게 된다. 사진은 결국 사진을 찍는 사람의 문제로 귀결된다. 자연과 인생에 대한 내 의식과 가치관의 문제다. 특별하게 세상을 보는 눈이 없다면 창조적 사진은 나오지 않는다.

물론 선생이 하는 충고는 주로 사진 전문가나 아마추어 작가들에게 해당되는 얘기다. 그러나 나 같이 취미로 사진을 찍는 사람도 충분히 경청할 가치가 있다. 이 책을 읽고 나서 사진을 보는 눈이 달라졌으며 어떻게 찍어야 할지 한 번이라도 더 고민해 보게 되었다. 통상적이고 의례적인 사진을 넘어선 다른 감각의 사진 세계가 있음을 알게 되었다. 사진은 단순히 사물이나 풍경을 찍는 게 아니다. 그 사물이나 풍경을 통해 내가 하고 싶은 말이 담겨야 한다. 이 사실 하나만이라도 가슴에 간직하고 셔터를 누르고 싶다. 사진의 새로운 세계에 눈을 뜨게 해 준 이 책에 감사한다.

책을 읽다가 감명 깊었던 몇 구절을 아래에 옮긴다. 가슴에 새겨두고 싶은 말들이다.


- 사진은 말이다. 말을 잘 하려면 오랜 세월에 걸쳐 말을 해보는 연습이 필요한 것이 아니다.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을 새롭게 보고, 느끼고, 깨달아야 한다. 사진이 꼭 그대로다. 우리의 삶에서, 자연에서 새로움을 느끼고 깨닫기만 한다면 곧장 좋은 사진, 훌륭한 작품은 태어난다. 그 느낌과 깨달음을, 느끼고 깨달은 대로 찍으면 그대로 좋은 사진이 되는 것이다. 오랜 경력도 우수한 장비도 필요 없다. 생각과 느낌만 새로우면 사진은 저절로 새로워지는 법이다.

- 새로운 소재를 찾는 것이 아니라 흔한 사물에서 새로운 의미를 찾는 작업, 이것이 예술로서의 사진 작업이다.

- 흔한 소재라도 거기에서 남들이 미처 발견하지 못한 새로운 의미를 찾았을 때, 그때 찍으라는 뜻이다.

- 사진은 사물의 의미 찾기 작업, 해석 작업, 의미 부여 작업이다.

- 사진은 만남의 예술이다. 모든 사물은 만남을 통해 비로소 보인다. 주고받는 눈짓, 안에서 안으로의 통로, 내가 그를 느끼는 순간 그도 나를 느낌을 내가 느낀다. 순간적으로 셔터가 눌러지고, 거기 태어나는 한 장의 사진. 한 편의 시.

- 조용히 바라보고 있던 어떤 순간 또는 갑자기, 한 사물이 내 안에서 어떤 의미로 살아날 때가 있다. 그때 사진은 찍힌다. 그리고 그것이 바로 나에게 '결정적 순간'이다.

- 사진은 자연과 인생에 대한 자기 발언이다.

- 꽃을 보면서 단순히 아름답다 하면 그것은 평범한 상식이다. 그런 얘기가 새삼스러울 것 없듯, 그런 사진 찍어보았자 밤낮 그게 그 사진이 되고 만다. 아름답되, 그 아름다움이 늘 보던 아름다움, 남들이 다 알고 있는 아름다움이 아니라 남들은 미처 느끼지 못하고 깨닫지 못한 아름다움, 내가 발견해낸 아름다움일 때 그 아름다움은 찍을 만한 가치가 있는 아름다움이 된다. 그런 것을 찾아 찍어야 창조적인 사진이 되는 것이다.

- 길에서나, 집 안에서나, 눈에 띄는 모든 사물을 보녀 그 사물을 어떻게 찍어야 사진이 될까를 관찰하고 생각하는 습관이 필요하다. 그렇게 찾아낸 것을 찍어야 한다. 이런 훈련을 되풀이하다 보면 어느 날 드디어 사물이 새로운 면을 드러내고, 새로운 느낌이 느껴진다. 드디어 눈이 뜨인 것이다. 그때부터는 덜컥 찍어도 사진이 된다.

- 초보자든 경험자든 여러분의 마음이 내키는 대로 하라는 것이다. 여러분이 하고 싶은 대로 하라는 것이다. 자기 생각, 자기 느낌에 따라 전적으로 자유롭게 사진을 해야 한다. 만일 원칙이라는 것이 있다면 이것 뿐이다.

- 한 발 더 들어가라!

- 내가 보고 느낀 것을 확실하게 표현하기 위해 한 발 더 들어가라는 것이고, '사진은 뺄셈'이라고 한 것이 이런 뜻이다. 이렇게 좁혀 찍어서 사진이 제대로 되기 시작하면 다음부터는 어떤 것을 찍어도 사진을 만들 수 있는 자신감이 생긴다. 사진에 자신이 생기면 그때부터는 좁게 잡든 넓게 잡든 각자가 알아서 하면 된다.

- 사진은 깨달음이다.

- 사진은 사물을 찍는 수단이 아니다. 사진이 찍는 것은 사물이되 찍고자 하는 내용은 사물이 아니다. 사물 너머에 있는 어떤 것이다.

- 구체적 사물(소재)로 추상적 관념(주제)을 찍어내는 것, 이것이 사진이다.

- 예술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진실성이다. 그리고 절실함이다. 절실하면 진정이 담기고, 서툴러도 그것이 좋은 사진이다. 기술과 테크닉은 부차적인 문제이다. 그리고 의식이다. 사진으로 찍는 것, 찍어야 하는 것은 무엇인가, 그리고 왜 나는 사진을 찍는가 등에 대한 확실한 의식이 바탕이 되어야 좋은 사진은 찍힌다. 아무리 기술이 뛰어나도 사진 인식이 갖추어지지 못했을 때, 그 사진은 달력 사진 이상의 것을 이루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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