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고본느낌

불꽃의 여자, 시몬느 베이유

샌. 2005. 8. 24. 19:34

“남을 구하기 위해서 사람은 자기 자신을 구원해야 하고, 자기 자신 속의 영혼을 해방시켜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자기희생이 필요하다. 희생은 고통을 받아들이는 것이고, 자신 안에 있는 동물성을 거부하고 자발적인 고통을 통해 인간 모두의 고통을 구원하려는 자유로운 의지인 것이다. 모든 성인은 자신을 인간의 고통으로부터 분리시키는 모든 정의롭지 않은 재물을 거부했다.”


이것은 시몬느 베이유가 고등중학교 시절 철학 시간에 쓴 작문의 한 구절이다.


시몬느 베이유는 1909년 2월 3일 프랑스 파리에서 태어났다. 아버지가 유대인 의사로 부유한 가정에서 자란 그녀는 총명했으나 늘 질병에 시달렸다.

이런 시절에 1차 세계대전을 겪으면서 그녀에게는 인간의 고통에 대한 문제가 화두처럼 따라다녔다. 그 고통을 외면하지 않고 자기희생을 통해 동참함으로써 사랑을 실천하겠다는 의식이 어릴 때부터 자라게 된다.


시몬느 베이유는 당대의 뛰어난 지성인이었지만 안정된 직업을 버리고 금속공장 여공으로 나섰다. 현장에서 노동자들과 생활을 함께 하는 노동운동가의 생활을 택한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병약한 그녀가 감당할 수 있는 생활이 아니었다. 노동자보다도 더욱 열악한 삶을 택함으로써 그녀는 건강을 더욱 해치게 된다.


휴양차 간 포르투갈의 작은 어촌에서 그녀는 종교적 세계에 눈을 뜨고 가톨릭에 관심을 갖게 된다.

그러나 죽을 때까지 세례를 받지는 않은 정신적 가톨릭 교인이었다고 할 수 있겠다.

그녀가 임종 직전 세례를 받는 것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했다고 하는데 결국은 포기했다고 한다. 그 이유는 세례를 받지 못하고 죽은 아이들이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고 있는데 자신만 천국에 들어갈 수는 없다는 것이다. 시몬느는 세례를 받아 천국에 이르기보다는 불행한 사람들과 천국 바깥에 머무르기를 바랐다.

이런 생활 태도는 그녀의 일생을 관통하고 있었다. 노동자, 농민의 고통을 함께 하기 위해 노동자와 농민의 생활을 자청하고, 식민지 국민들의 어려움에 함께 한다며 굶기를 다반사로 했다.

부유한 가정이기 때문에 누구보다 편하게 살 수 있었지만 그녀는 모든 혜택을 거부했다.

그녀는 제도적 종교인은 못 될지 모르지만, 그러나 하느님의 사랑을 전하는 가장 뜨거운 영혼이 아니었던가 싶다.


1936년 스페인 내전이 발발했을 때는 인민전선의 의용군으로 참전을 했다. 세상의 어느 곳이든 불의가 있는 곳에는 그녀는 발 벗고 앞장을 섰다.

1939년 2차 대전이 터졌을 때는 영국에서 프랑스 망명정부의 레지스탕스로 활동을 했다. 그러나 그녀는 자신의 조국 프랑스에 남아서 투쟁을 하지 못한 것을 늘 안타까워했다고 한다.


병약한 몸에 과로가 겹쳐 시몬느는 폐결핵으로 쓰러졌다. 그러나 요양소에서 조차 수용소의 포로들과 연대를 하겠다며 음식을 거부하다가 죽음에 이르렀다.


우리같이 평범한 소시민의 눈에 이런 비범한 사람의 생애는 옷깃을 여미게 한다.


시몬느 베이유 - 그녀는 불꽃같이 자기를 태워 세상을 밝힌 투사며 사상가였다. 평생을 노동자들, 사회적 약자들을 위해 사회운동에 투신했으며 그들의 고통을 몸소 체험하고 자신의 이념을 진실 되게 실천으로 옮겼다.

그녀의 열정과 순수함을 기억하면 지금 여기서의 내 모습은 부끄럽기 그지없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는 아직도 그녀에 대한 평전이나 그녀의 글이 제대로 출판되지 않고 있다. 앞으로 그런 책들이 소개되어 그녀의 생애와 사상을 좀더 깊이 접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오늘이 바로 시몬느 베이유가 세상을 뜬지 꼭 62주년이 되는 날이다.

그녀는 1943년 8월 24일, 서른넷의 아까운 나이로 결핵요양소의 병실에서 불꽃처럼 타올랐던 일생을 조용히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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