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읽는기쁨

집에 대하여 / 안도현

샌. 2005. 6. 10. 16:46

손에 흙 하나 묻히지 않고 집을 갖는다는 것은

저 제비들에게 얼마나 미안한 일인가

볏짚 한 오라기 엮어 얹지 않고

진흙 한 톨 물어다 바르지 않고

너나 없이 창문 큰 집을 원하는 것은

세상에 그만큼 훔치고 싶은 것이 많기 때문인가

허구한 날 공중에 떠서 살아가다 보면

내 손으로 땅 위에 집을 한 채

초가삼간이라도 지어 보고 싶을 때가 있다

혹시 바람에 찢기도 무너진다 해도

훗날 내 자식새끼들이 자라면 꽁지깃을 펴고

실패하지 않는 집을 다시 지을 테니까

 

- 집에 대하여 / 안도현

 

남은 내 꿈의 중의 하나는 내손으로직접 내 집을 지어 보는 것이다.

언젠가 넥타이를 벗어 던지게 되는 날이 오면 그 꿈은 현실로 다가올 것으로 믿고 있다.

흙을 올리고, 나무를 세우며, 1년이 걸리든, 3년이 걸리든, 작은 집 한 채 천천히 만들어 갈 것이다.

새끼들은 다 커서 떠나갔고, 비록 그 따스한 둥지에서 내 새끼들을 길러보지는 못하지만 이 지구별에 와서 거처하는 집 하나자신의 손으로 못 만들어 보고 떠난다는 것은 왠지 억울할 것 같다.

가끔씩 작은 새의 빈 둥지를 만나게 될 때면 더욱 그런 생각이 든다. 그리고 집을 짓고 있는 미래의 내 모습을 상상하면 절로 즐거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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