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살이의꿈

장마의 끝

샌. 2004. 7. 19. 13:58

장마가 끝났다는데 아직 하늘은 흐리다. 가끔 햇살이 보이다가도 이내 구름으로 덮이고 짧게 비가 뿌리기도 한다.

그래도 장마가 끝났음을 몸으로 느낄 수가 있다. 이번 장마는 막바지에 폭우를 쏟아붓더니 여러 곳에 비 피해를 주고 물러났다.

이곳에 오는 날은 얼마나 비가 세차게 내리던지 운전하기가 쉽지 않았다. 도로는 흙탕물로 흘러넘치고 숨가쁘게 움직이는 브러쉬로도 차창의 빗물을 감당하기가 힘들었다.

그렇게 한 시간가량 퍼붓더니 언제 그랬냐느듯 순간에 잦아들었다. 다행히 터에 피해는 없었다. 아마 작년같았으면 산에서 흘러내린 토사로 또 한번 고생했을 것이다. 그동안 땅이 다져지고 풀이 덮혀서 흙쓸림이 훨씬 줄어들었다.

그러고 보면 그간에 땅도 몸살을 몹시 한 것 같다. 중장비가 들어와 끊고 파헤치고 했으니 땅인들 어디 온전했으랴 싶다. 그 땅이 다시 제 자리를 찾자면 오랜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이곳에 내려와서 자주 느끼는 것이지만 땅은 결코 죽어있는 무기물 덩어리가 아니라 온갖 생명을 키우는 모태이면서 식물이나 동물과 상호 호흡을 하면서 살아가는 큰 생명체라는 사실이다. 땅은 거대한 어머니의 품이다.

오늘은 면소재지까지 약 6km되는 거리를 걸어 나왔다.

느릿느릿 걸어서 그런지 두 시간이 넘게 걸린다. 그러나 차로 쌩 하고 달려갈 때는 보이지 않던 것들을 많이 만났다.

좔좔 흐르는 개울물 소리도 들리고, 길가 집에서 무엇이 그리 재미있는지 깔깔거리며 놀고 있는 아이들의 웃음소리도 들리고, 농가의 외양간에서 한가로이되새김질을 하며무심하게 밖을 바라보고 있는 황소의 선한 눈망울과 눈맞춤도할 수 있고, 산에서는 뻐꾸기 소리도 들리고, 그리고 쉼없이 나타나는 들꽃들과도 눈인사를 나눌 수 있었다.

차를 타고 지날 때는 순간에 일별하며 보았던예쁜 집의 마당에 무엇이 있는지도 알게 되었고, 대문 옆에 세워놓은 장승이 혀를 내밀고 있는 코믹한 모습도 오늘 처음 보았다.

면소재지에서 볼 일을 보고처음으로 PC방이란데를 들어와 본다.

실내는 아이들이 게임을 하는 소음으로무척 소란하다. 그래도 곧 적응이 되어서 몇 군데 메일을 보내고 블로그를 열어 글을 쓰는데 별 지장은 없다.

시골로 내려간 어느 소설가가집에는 컴퓨터를 없애고 가끔씩 읍내에 나가 PC방에서 메일을 쓰기 위해 인터넷을 사용한다는 글을본 적이 있다. 집에 있는 컴퓨터로 인하여 인터넷을 한다고 이리 저리 돌아다니느라 쓸데없는 시간 낭비가 많다는 것에 공감하기 때문이다.

터에도 TV, 컴퓨터가 없다.일부러 들여놓지를 않았는데 세상 소식은 가끔씩 라디오를 통해 듣는다.

그러니 꼭 옛날로 돌아간 듯 하다. 초등학교 때 우리 마을에 라디오가 있는 집이있었는데사랑방에는 늘 마을 사람들도 북적였다. 그 집 초가 지붕 위로 높이 솟은거미줄 모양의 라디오 안테나가신기하고 부러웠다. 마을 잔칫날이면 면에서 스피커를 빌려와 그 라디오 소리를 온 동네에 크게 틀어 주었다.

오랜만에 라디오와 벗하다 보니 라디오가 다른 것보다 훨씬 인간적이라는 느낌이 온다. 그러나 이것도 내 어릴 적 경험에서 유래된 주관적인 생각일지 모른다. 아마도 요즈음 아이들이 자라서는 날카로운 전자음과 현란한 화면을 통해서 포근한 유년의 기억을 상기할지도 모른다.

갑자기 찾아온 이 자유 시간의 여유가 아직 온전히 실감나지 않는다. 이 시간을 무엇으로 채우려기 보다는 그냥 텅 빈채로 놓아두고 싶다.

복잡한 생각도 그치고 몸과 마음을 그저 제 가는대로 놓아두자.

이제 나가면 자장면 한 그릇을 사먹고 돌아가는 길도 걸어서 가야겠다.

저 싱싱한 초록의 들판과 산야에, 그리고 상큼한 바람에 내 마음을 내맡기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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