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년의나무

몰운대 고사목

샌. 2012. 10. 27. 12:39

 

 

정선에 있는 몰운대(沒雲臺)는 화암팔경 중 하나다. 하늘 나라 신선이 구름 타고 놀러왔다는 곳이다. 깎아지른 바위 절벽에서 바라보는 전망이 시원하지만, 곧게 정비된 하천과 비닐하우스가 분위기를 반감시킨다. 옛날 시인묵객들이 찾아 감탄했던 풍경은 머릿속에서나 그려볼 뿐이다.

 

몰운대 바위 끝에 고사목 한 그루가 서 있다. 죽은지 상당히 오래된 소나무 고사목이다. 살아 있을 때도 멋있었겠지만 죽어 형해만 남은 모습은 또 다른 멋이 있다. 죽은 나무는 자신이 자라고 지탱했던 밑의 바위와 색깔이 같아졌다. 나무는 죽은 뒤가 오히려 더 당당하다. 고사목은 이곳을 찾는 사람들에게 삶과 죽음의 의미를 전해주는 듯 하다.

 

 

 

 

황동규 시인은 '몰운대행'에서 이렇게 노래했다.

 

1

사람 피해 사람 속에서 혼자 서울에 남아

호프에 나가 젊은이들 속에 박혀 생맥주나 축내고

더위에 녹아내리는 추억들 위로

간신히 차양을 치다 말고

문득 생각한 것이 바로 무반주(無伴奏) 떠돌이.

폐광지대까지 설마 관광객이?

지도에서 사라지는 길들의 고요

지도를 펴놓고 붉은 볼펜으로 동그라미 하나를 치고

방학에도 계속 나가던 연구실 문에 자물쇠 채우고

다음날 새벽 해뜨기 전 길을 나선다.

 

2

영월 청령포를 조심히 피해 31번 국도를 탄다.

상동 칠량에서 국도를 버리고

비포장 지방도로로 올라선다.

중석 걸러낸 크롬 옐로우 물이

길 옆 시내 가득 흘러오고

저단 기어를 넣은 '프레스토'가

프레스토로 떤다.

차 고장 없기만을 길의 신(神)에게 빌며

망초꽃이 모여선 길섶을 지나

아다지오로

덤프트럭 자국 깊이 파인 언덕을 오른다.

길의 신이 급커브를 약간 풀어놓으며

아슬아슬한 낭떠러지를 보여준다.

크롬 옐로우가 꿈결처럼 몸을 바꿔

흑인 영가로 흐르기 시작한다.

흑인 영가의 어두운 음을 끼고

에어콘 끄고도 헐떡이는 차를 천천히 몰아

온갖 생물학이 모여 썩고 있는 쓰레기 낟가리를 돈다.

아! 폐광 하나가 검은 입을 벌리고 비탈에 박혀 있다.

입술 위로 너와지붕이 튀어나오고

그 위엔 다듬지 않은 풀들이

수염처럼 자라고 있다.

빠지고 남은 이빨처럼 녹슨 쇠기둥 두 개가 박혀 있고

녹슨 밀차 한 대가 굴 밖으로 나오려다 말고

뒤틀린 선로 위에 심드렁하게 서 있다.

들이밀면 머리부터 씹힐 것 같아

목을 움츠리고 슬쩍 몸을 들이민다.

귀가 먹먹

아 사람 사라진 사람 냄새!

천정에서 물 한 방울이

정확히 머리 위에 떨어진다.

 

3

고개가 가파르다.

자장율사(慈藏律師)가 진신사리 봉안했다는 정암사 가는 길

그도 헐떡이며 넘었으리라.

앵앵대는 소형차를 길가에 그냥 내버리고 싶다.

가만, 자장이며 의상(義湘) 같은 쟁쟁한 거물들이

경주, 황룡사, 부석사를 버리고

왜 강원도 산 속을 방황했을까?

 

왜 자장은 강원도 산골에서 세상을 떴을까?

입적지(入寂地) 미상의 의상도

강원도 산골의 행려병자가 아니었을까,

이곳 어디쯤에서?

가파른 언덕을 왈칵 오르자

해발 1280m의 만항재.

태백시 영월군 정선군이 서로 머리 맞댄 곳.

자글자글대는 엔진을 끄고 차를 내려 내려다보면

소나무와 전나무의 물결

거문비나무의 물결

사이사이로 비포장도로의 순살결.

저 날것,

도는 군침!

황룡사 9층탑과 63빌딩이

골짜기 저 밑에 처박혀 보이지 않는다.

바람이 없이도 마음이 온통 시원하다.

잠시 목숨을 잊고 험한 길 다시 한번 마음놓고 차를 채찍질해

황룡사, 63빌딩, 정암사를 순식간에 지나서

정선 쪽으로 차를 몬다.

 

4

화암약수터 호텔 여주인은 웃으며 말했다.

"제철인 데다 버섯 재배농가 회의로

정선군 모든 방이 다 찼지요.

몰운대 저녁노을이나 보시고

밤 도와 영월이나 평창으로 나가시죠."

표고버섯죽 한 그릇 비우고

길을 나선다.

신선하고 기이한 뼝대

저녁빛을 받아 얼굴들이 환했다.

그 위에 환한 구름이 펼쳐진 길

그 끝을 향해.

 

5

몰운대는 꽃가루 하나가 강물 위에 떨어지는 소리가 엿보이는 그런 고요한 절벽이었습니다. 그 끝에서 저녁이 깊어가는 것도 잊고 앉아 있었습니다.

새가 하나 날다가 고개 돌려 수상타는 듯이 나를 쳐다보았습니다. 모기들이 이따금씩 쿡쿡 침을 놓았습니다.

(날것이니 침을 놓지!)

온몸이 젖어 앉아 있었습니다.

도무지 혼자 있는 것 같지 않았습니다.

 

- 몰운대행(沒雲臺行) / 황동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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