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속일상

가을 강변을 걷다

샌. 2012. 10. 29. 17:56

 

누가 가을을 독서의 계절이라고 했던가. 산과 들이 오색 단풍으로 덮이고, 파란  하늘이 끝없이 펼쳐진 이러한 때에, 집안에만 틀어박혀 책을 본다는 건 죄를 짓는 것 같은 느낌이다. 가을 햇살의 유혹을 이길 자 누구랴? 대부분의 사람들은 일과 직장에 매여 꼼짝하지 못하지만, 이럴 때는 나 같은 불한당으로서의 행복을 맛본다.

다산길 1코스(한강나루길)를 걸었다. 1코스는 한강 삼패지구에서 운길산역까지 한강을 따라 걷는 16.7km의 길이지만, 오늘은 팔당역에서부터 운길산역까지 걸어보기로 한다. 팔당역에 승용차를 주차시켰다.

옛 중앙선 철길을 걷어내고 자전거 도로와 보행로를 만들었다. 새로 포장을 했는지 아스팔트 냄새가 아직 남아 있다. 강가로 나서니 바람이 쌀쌀했지만 안개가 걷히고 햇볕이 비치니 곧 따스해졌다.

옛 도로와 나란히 나 있는 길은 팔당댐을 지나간다.

 

봉안터널이다. 기차 터널을 걸어서 지나는 기분이 색다르다. 내부 조명도 은은하게 해 놓았다. 고향 마을 앞에도 이런 터널이 있었다. 어렸을 때는 컴컴한 굴 속이 너무 무서워 달음박질로 굴 앞을 지나곤 했다. 그러나 좀 커서는 굴 속에 들어가 장난을 치기도 했다. 용감한 아이는 기차가 지나갈 때도 굴 안에 남아 있으면서 담력을 자랑했다. 그때 같이 뛰놀던 동무들을 이젠 거의 만나지 못한다.

아스팔트길에서 벗어나면 이런 시골길도 만난다. 한강나루길은 전부 아스팔트로 되어 있는 게 단점이다. 자전거 타는 데는 좋을지 몰라도 걷는 사람에게는 피곤하다. 보행로는 흙으로 할 수는 없을까? 아쉬움이 남는다.

 

팔당호 풍경.

한강변의 유명한 음식점 '봉주르'. 철길이 자전거길로 변한 뒤 손님이 더 많아진 것 같다.

옛 능내역사는 그대로 남아 있다. 옛날 고향을 오갈 때 타고 다닌 완행열차가 이 역에서 섰다. 이쯤 오면 청량리에 거의 도착한 셈이다.

역사 내부. 역 사무실은 '고향 사진관'으로 바뀌었다. 옛 분위기가 나는 흑백사진을 찍어준다.

기찻길이 자전거길로 변하는 대변화가 일어났다. 40년 전 여기를 기차로 다니면서 같은 자리의 자전거길 위에 내가 있을 줄 상상이나 할 수 있었겠는가.

 

양수철교 역시 변신을 했다.

다리 양끝에 있던 초소는 쉼터로 변했다. 그때 총을 들고 경계를 서던 초병의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어린 눈에 무척 멋있게 보였던 기억으로 남아 있다.

 

철교에서 바라본 양수리 풍경.

철교를 반쯤 걷고는 되돌아 나왔다. 그리고 운길산역에선 전철을 타고 팔당역으로 돌아왔다. 걸은 거리는 10km, 걸린 시간은 세 시간(11:30 ~ 14:30)이었다.

오늘은 추억 걷기가 되었다. 걸은 길이 40여 년 전부터 인연을 맺은 장소였기 때문이다. 길 주변은 근교 나들이할 때 자주 다녔던 곳이기도 하다. 젊은이들은 페달을 밟으며 새로운 추억을 만들겠지만, 나는 걸으며 쓸쓸히 옛 생각에 잠겼다. 잊으려 해도 눈에 보이는 풍경이 자꾸만 세월의 흐름을 상기시켜 주는 것이었다. 그러나 일말의 애상 정도는 이 계절과 잘 어울리지 않는가. 모든 게 너무나 빨리 흘러간다. 이 가을과도 곧 안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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