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속일상

산막이옛길과 화양구곡

샌. 2012. 11. 11. 09:55

 

경떠회 8명이 괴산 지역으로 여행을 다녀왔다. 지난 3, 4일 이틀간의 나들이였다. 첫째 날은 산막이옛길을 걸었고, 둘째 날은 화양구곡을 답사했다.

 

산막이옛길은 괴산호를 따라 옛길을 복원해서 만들었다. 옛날에는 깊은 산골짜기 안쪽에 산막이마을이 있었다. '산막이'는 산으로 막혀 있는 뜻이다. 1957년에 괴산댐이 만들어지면서 계곡이나 길이 대부분 물에 잠겼을 것이다. 걷기 열풍이 불면서 이 길이 다시 세상에 드러났다. 마을 사람이 오가던 고단한 길이 아니라 건강과 레저용으로 탈바꿈된 길이다.

 

 

 

 

흙길도 있지만 대부분이 나무 데크로 만들어졌다. 이런 길은 호젓하게 걸어야 맛인데 주말이라 그런지 너무 사람이 많았다. 저녁이 되어서야 소란이 잦아졌다. 

 

 

 

 

아담한 괴산호 풍경.

 

 

늦가을 산이 포근했다.

 

 

 

연리지.

 

 

여러가지 볼거리를 위해 애쓴 흔적이 역력했다. 이 나무에는 정사목(精事木)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그리고 친절하게 나무 줄기에 암수 표시까지 해 놓았다.

 

 

산막이마을은 식당과 팬션촌으로 변신중이었다. 다 쓰러져가는 집 한 채가 한 시대가 지나갔음을 말해주는 듯 했다.

 

 

 

돌아올 때는 유람선을 탔다. 산길 걷고, 배 타고, 풍경이 정겹고, 산막이옛길은 다양한 즐거움을 주는 길이다.

 

둘째 날은 화양구곡(華陽九曲)을 찾았다. 화양구곡은 송시열(宋時烈, 1607~1689)과 인연이 깊다. 그는 20여 년에 걸쳐 이곳을 왕래하거나 기거했다고 한다. 노론(老論)의 우두머리로서 정국을 좌지우지했을 것이다. 그러나 결국은 정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사약을 받고 죽었다.

 

'화양(華陽)'이라는 이름이 '중국의 햇빛'이라는 뜻이니 그가 얼마나 명나라를 사모했는지 알 수 있다. '구곡(九曲)'도 주희가 푸첸성 무이산(武夷山)에 은둔하며 무이구곡을 노래하자 모화사상에 물든 이 땅의 사대부들도 따라서 구곡을 합창했다고 한다. 이황의 도산구곡, 이이의 석담구곡 등 우리나라에는 구곡이라는 명칭이 붙은 계곡이 수도 없이 많다.

 

이런 노론 세력은 조선 후기까지 이어지고, 일본 조선 지배에 협조하며 권력을 이어갔다. 그리고 해방 정국에선 친미로 전환하여 지금에 이르고 있다고 함께 간 동료는 설명했다.

 

 

 

 

 

 

화양구곡으로 들어가는 입구에는 늦은 단풍이 예뻤다.

 

 

일곡(一曲), 경천벽(擎天壁).

 

 

이곡(二曲), 운영담(雲影潭)

 

 

삼곡(三曲), 읍궁암(泣弓巖).

 

 

사곡(四曲), 금사담(金沙潭)과 암서재(巖棲齋).

 

 

오곡(五曲), 첨성대(瞻星臺).

 

 

육곡(六曲), 능운대(凌雲臺).

 

 

칠곡(七曲), 와룡암(臥龍巖).

 

 

팔곡(八曲), 학소대(鶴巢臺).

 

 

 

구곡(九曲), 파천(巴천).

 

 

 

화양계곡에서는 송시열의 흔적을 너무 강조하고 있다. 오간 사람이 어찌 송시열 하나만인가. 자연은 자연 경치 그대로 즐기고 싶다. 그의 사대성과 숭명주의(崇明主義)를 접하고 나니 더욱 그렇다. 아니라면 그에 대한 다양한 평가를 올바로 소개해 주던지....

 

오후 되면서 날이 흐려지고 가는 빗발이 날렸다. 전날 밤늦게까지 마신 술이 과했는데 구곡인 파천까지 왕복하고 내려오니 몸이 가벼워졌다. 일행과 늦은 점심을 하고 나는 떨어져 고향으로 향했다. 이틀간 일행과 산길을 함께 걸으며 동시에 사람으로서 걸어갈 길에 대해서도 곰곰 생각해 본 여행이었다.

 

'사진속일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불암산과 천마산  (0) 2012.11.19
가벼운 산책  (0) 2012.11.16
마늘 놓고 양파 심고  (0) 2012.11.10
풍경(24)  (0) 2012.10.31
가을 강변을 걷다  (0) 2012.10.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