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읽는기쁨

틈이 난 벽에 핀 꽃 / 알프레드 테니슨

샌. 2012. 11. 24. 12:16

틈이 난 벽에 핀 꽃

그 갈라진 틈에서 널 뽑았다

여기, 뿌리째, 내 손에 들고 있다

작은 꽃 - 하지만 너는 무엇인지

뿌리째, 전부, 내가 이해할 수 있다면

신(神)과 인간이 무엇인지 알 수 있으련만

 

- 틈이 난 벽에 핀 꽃 / 알프레드 테니슨

 

Flower in the crannied wall

I pluck you out of the crannies

I hold you here, root and all, in my hand

Little flower - but if I could understand

What you are, root and all, all in all

I should know what God and man is

 

- Flower in the Crannied Wall / Alfred Tennyson

 

 

등산을 하다 보면 바위틈에서 자라는 소나무를 자주 만난다. 단단한 바위에 막힌 뿌리는 겉으로 드러나 바위를 감싸고 있다. 그러나 흙 한 줌 만나기 어렵다. 생명이란 무엇인지, 그 강인함과 함께 주어진 생을 살아야 하는 생명으로서의 숙명이 안스럽게 느껴진다. 틈이 난 벽에 핀 꽃을 본 시인의 심정도 비슷했을 것이다.

 

이 시에서는 자연을 대하는 서양의 사고방식이 드러난다. 시인은 꽃을 뽑아 들었다고 했다. 뿌리를 확인함으로써 꽃을 더 잘 알 수 있다고 생각했는지 모른다. 또, 꽃을 이해하려 한 점이다. 원문이 'understand'로 곧 이성(理性)으로 인식한다는 뜻이다. 테니슨이 살았던 시대는 1800년대였다. 과학이 모든 것을 설명해 주고 해결해 줄 것이라 믿었던 때였다. 시인조차 과학적 마인드에 젖어 있음을 볼 수 있다.

 

꽃을 이해한다고 꽃을 알 수 있을까? 꽃을 과학적으로 분석하고 연구한다고 생명의 신비가 밝혀지는 건 아니다. 영취산에서 부처님이 대중 앞에서 꽃 한 송이를 들어 보이셨다. 가섭존자 안에서 반짝, 하고 빛이 지나갔다. 가섭존자는 빙그레 미소를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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