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읽는기쁨

연인의 자격 / 유안진

샌. 2012. 11. 28. 10:45

초가을 햇살웃음 잘 웃는 사람

민들레 홀씨 바람 타듯이

 

생활은 품앗이로 마지못해 이어져도

날개옷을 훔치려 선녀를 기다리는 사람

 

슬픔 익는 지붕마다

흥건한 가을 달빛 표정으로 열이레 밤하늘을 닮은 사람

 

모습 있는 모든 것은 사라지고 만다는 것을 알고

그것들을 사랑하기에

너무 작은 자신을 슬퍼하는 사람

 

모든 목숨은 아무리 하찮아도

제게 알맞은 이름과 사연을 지니게 마련인 줄 아는 사람

 

몇 해 더 살아도 덜 살아도

결국에는 잃는 것 얻는 것에 별 차이 없는 줄을 아는 사람

 

감동 받지 못하는 시 한 편도

희고 붉은 피톨 섞인 눈물로 쓰인 줄을 아는 사람

 

커다란 것의 근원일수록 작다고 믿어 작은 것을 아끼는 사람

 

인생에 대한 모든 질문도 해답도

자기 자신에게 던져서 받아내는 사람

 

자유로워지려고 덜 가지려 애쓰는 사람

 

맨살에서 늘 시골집 저녁 연기 내음이 나는 사람

 

모름지기

이런 사람이야말로 연인 삼을 만하다 할지어다

 

- 연인의 자격 / 유안진

 

 

저도 당신의 연인이 될 수 있을까요? 후후, 농담이니 기분 나빠 하진 마세요. 자격이 안 된다는 건 제가 잘 아니까요. 그래도 이런 사람 되고 싶고, 이런 사람 만나고 싶어요. 그 사람 옆에 있으면 달콤한 향기에 취할 것 같아요. 사람들이 전부 이런 연인을 찾는다면 세상은 동화 나라가 되지 않을까요? 모두가 이런 사람이 되려고 할 테니까요. 그러나 덜 가지려 애쓰는 사람이 어디 있나요? 맨살에서 늘 시골집 저녁 연기 내음이 나는 사람은 어디서 찾나요? 그러나 압니다. 그이가 이 세상 어딘가에 있기에 세상이 이만큼 아름답다는 것을요. 그 사람이 그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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