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고본느낌

26년

샌. 2012. 12. 13. 10:35

 

1980년 5월 광주의 그날로부터 26년 뒤인 2006년, 가족을 잃은 세 사람이 대기업 회장의 지원 아래 '그 사람'을 처단하기 위한 복수 프로젝트에 들어간다. 그리고 미진이 쏜 최후의 총성 한 발과 함께 화면은 어두워진다.

 

우리는 현대사에서 광주항쟁이라는 엄청난 트라우마를 가지고 있다. 실제로 가족을 잃고 삶이 망가진 사람들의 사무치는 심정을 국외자인 우리가 어떻게 헤아릴 수 있을까? 영화에서 대변하고자 하는 복수혈전이 이해되고도 남는다. 영화를 보면서 그분들의 아픔에 진하게 공감되었다. 미진이 홀로 서울 도심에서 결행한 1차 시도가 실패로 돌아갔을 때는 너무나 안타까웠다.

 

영화에서 작전 설계자인 김갑세 회장의 말에서 나오듯이 희생자들이 진심으로 바라는 것은 가해자의 참회일 것이다. 용서와 화해란 가해자의 고백과 속죄에서 비롯된다. 일방적인 용서란 있을 수 없다. 그런데 가해자가 오히려 큰소리치며 떵떵거리고 사는 현실이 피해자를 더욱 고통 속에 빠뜨린다. 그날의 비극이 계속되고 있는 원인이다.

 

이 영화는 개인적인 복수를 넘어 국가에 대한 저항을 보여준다고 해석된다. 광주의 비극은 전형적인 국가 폭력이었다. 국가는 개인의 희생에 대해 눈썹 하나 까딱하지 않는다. 국가가 국민을 외면할 때 피해자인 국민이 선택할 수 있는 길은 무엇일까? 체념이든, 아니면 영화가 보여주듯 같은 폭력으로 맞대응하는 방법밖에는 없을 것이다.

 

사실 영화를 보고 나서도 마음이 개운하지 못했다. 한 사람을 처치하는 것으로 문제가 해결된다면 오죽 좋겠는가. 지금과 같은 체제 아래서는 또 다른 '그 사람'이 나오는 건 피할 수 없다. 이때까지의 인간의 역사가 그래 왔다. 뿌리를 건드리지 않고 잎사귀 하나를 제거한다고 근원적인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는다. 그건 개인적인 복수일 뿐 심판이 되지는 못한다.

 

나는 이 영화를 보면서 미진이 겨누는 총구는 국가라는 거대한 괴물도 겨누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국민을 보호한다는 명분 아래 국가는 너무나 큰 권력을 가지고 있다. 말 그대로 국가의 주인이 국민이 되도록 하기 위해서는 각자의 깨어있는 의식이 필요하다. 국가를 순치시키지 않는다면 광주의 비극의 언제라도 다시 일어날 수 있다.

 

감독은 영화에 오락적 요소를 너무 많이 집어넣었다. 관객을 모으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었는지 모른다. 이 영화가 단지 증오에 찬 복수 활극으로 해석되지 않기를 바란다. 주인공들이 용감하게 떨쳐 일어난 것이 무엇 때문이었는지를, 증오가 어떻게 승화되어야 하는지를, 우리가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를 반성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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