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고본느낌

김종서와 조선의 눈물

샌. 2012. 12. 27. 10:39

인간 역사가 시작된 이래 권력에 눈이 먼 무리가 늘 있었다. 그들은 세상에 분탕을 치면서 수많은 사람에게 피와 눈물을 쏟게 했다. 그리고 국가의 발전을 몇백 년씩이나 뒷걸음치게 만들었다. 조선의 수양대군과 그의 주위에 모였던 무뢰한들이 그러했다.

 

이덕일 선생이 쓴 <김종서와 조선의 눈물>은 김종서를 중심으로 수양의 야망과 조선의 비극을 생생히 설명한다. 김종서가 조정에 출사한 때로부터 단종 죽음까지의 이야기다. 문종이 일찍 죽고 어린 단종이 즉위하자 왕위를 노린 수양은 김종서를 제일 두려워했다. 거사 당일 직접 김종서의 집으로 찾아가 제일 먼저 살해한다. 김종서의 죽음은 그 혼자만의 죽음이 아니었다. 그것은 단종의 죽음이자 그가 섬겼던 태종, 세종, 문종이 만들어 놓은 정상적인 헌정질서의 죽음이었다. 조선이 난세로 빠져드는 출발이기도 했다.

 

김종서(金宗瑞, 1383~1453)는 문무를 겸비한 선비였다. 책에서는 그의 북방 개척 이야기가 많이 나온다. 김종서는 세종의 절대적 신임 아래 함길도절제사 등으로 근무하여 여진족을 막고 육진(六鎭)을 세워 국토를 넓혔다. 5척 단신의 작은 체구였지만 '대호(大虎)'라는 별명을 얻을 정도로 용맹했다. 원칙과 대의에서 어긋나지 않았던 충신은 쿠데타 세력의 철퇴와 함께 멸문의 화를 입었다.

 

단종을 쫓아내고 왕에 오른 수양는 자신의 패거리들을 공신으로 책봉하고 국가를 사적 이익 실현의 도구로 전락시켰다. 태종이 공신들을 숙청해서 강한 왕권을 확립하고 안정된 권력을 행사할 수 있었던 조선은 다시 권력 싸움의 소용돌이로 빠져들었다. 유교에 기반을 둔 조선이 궁궐에서부터 예와 의가 무너지고 비정상의 시대가 시작된 것이다. 세조 재위 기간은 고작 13년, 그 짧은 왕 노릇을 위해 조카와 동생을 비롯해 수많은 원혼을 만들었다. 한 사람의 야욕 때문에 생긴 고통과 아픔을 생각하면 가슴이 답답하다.

 

수양이 내세운 명분은 왕권 강화였다. 그들은 자신들이 저지른 쿠데타를 계유정난(癸酉靖亂)이라고 불렀다. 계유년에 국가의 위태로운 난리를 평정했다는 뜻이다. 공자가 정명(正名)의 중요성을 강조했는데, 이는 정난(政亂)으로 고쳐야 맞는 게 아닐까? 분명한 것은 계유정난 이후로 조선은 퇴보의 길로 들어섰다는 것이다. 만약 문종이 일찍 병사하지 않고 세종 같은 치세가 이어지다가 단종에게 순조롭게 양위 되었다면 조선 역사는 어떻게 달라졌을까? 역사에 가정은 없다지만 결과적으로 역사의 기로에서 조선은 최악의 선택을 한 셈이었다.

 

수양은 분명히 명분 없는 반란을 일으켰고, 그 후의 행보도 문제가 많았다. 민본(民本)이 아닌 쿠데타 세력, 그들만의 나라를 만든 것이다. 공신들에게는 천국이지만 백성에게는 지옥인 나라가 되었다. 선대의 태종은 그나마 왕권을 강화한 후 정치와 민생을 안정시켰다. 세종대왕의 황금시대를 여는 초석을 놓았다고 평가되고 있다. 그러나 수양의 행태는 변명의 여지가 없어 보인다.

 

그때로부터 560년이 흘렀다. 반란에 가담해 정권을 장악했던 무리들은 현실의 영화를 누렸겠지만 영광된 이름을 남기지는 못했다. 반대로 수양에 반대하다 목숨을 잃은 사람들은 현실에서는 패배자였지만 역사에서는 승리자가 되었다. 지은이는 말한다. 중요한 것은 현실적 이해가 아니라 지킬 만한 가치가 있는 것을 지키기 위한 삶이란 것이다. 역사는 가치를 지키기 위해 걸었던 인생들이 성공한 인생임을 말해주고 있다. 역사가 우리에게 주는 교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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