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고본느낌

함석헌 읽기(1) - 들사람 얼

샌. 2012. 12. 31. 11:35

한길사에서 펴낸 30권으로 된 함석헌 저작집을 읽으려 한다. 왜 지금 함석헌인가? 어두운 시대를 이겨낼 힘을 선생한테서 얻고 싶었기 때문이다. 선생의 사자후를 다시 들어야 내 속이 시원해질 것 같아서다. 따스한 봄볕만 바라는 세태에서 한 소리 큰 뇌성을 듣고 싶다.

 

이번에 1권을 읽어보니 선생의 말씀은 예언자의 목소리며 혁명의 외침이다. 요단강 세례 요한의 고함이다. 어둠과 불의의 시대를 밝히는 횃불이다. 지금도 생생히 살아 움직이는 생명의 말씀이다.

 

선생은 험난한 20세기를 온몸으로 사셨다. 일본 강점기, 해방, 6.25, 이승만독재, 4.19, 5.16, 군사독재 등을 거치며 생명 존중과 인간 자유를 위하여 싸웠다. 선생의 사상은 민중과 씨알, 고난사관, 비폭력 평화주의, 국가와 민족을 넘어서는 세계주의, 개혁과 혁명, 사회진화론, 종교적 가치관, 개인주의를 넘어선 전체주의(holism), 공생론 등 지금 이 시대에도 꼭 필요한 것들이다.

 

선생의 말씀에 무슨 말을 더 붙일까. 군더더기만 될 뿐이다. 책을 읽다가 마음이 동한 부분은 여기에 옮긴다. 그렇게 30권을 읽으려 한다.

 

 

들사람이란 다른 것 아니고 스스로 제 살을 찢는 자다. 그는 문화를 모른다. 기술을 모른다. 수단을 모른다. 인사를 모른다. 체면을 아니 돌아본다. 그는 자연의 사람이요, 기운의 사람이요, 직관의 사람, 시의 사람, 독립독행의 사람이다. 그는 아무것도 보지 않는 사람, 아무것도 듣지 않는 사람, 다만 한 가지 천지에 사무치는 얼의 소리를 들으려 모든 것을 돌아보지 않는 사람이다.

들사람이여, 옵시사!

와서 다 썩어져가는 이 가슴에 싱싱한 숨을 불어넣어줍시사!

사람의 삶이 싸움인 줄을 모르나 봐! 싸움을 주먹으로 하는 줄, 무기로 하는 줄, 꾀로 하는 줄만 알고 기(氣)로 하는 것인 줄, 얼로 하는 것인 줄을 모르나 봐. 삶은 싸움이요, 싸움은 정신이다.

힘이 없고, 생각이 아니 나고, 지식이 떨어지고, 꾀가 모자라는 것은 정신이 죽었기 때문이다.

사람의 혼은 우주의 근본 되는 절대의 정신과 그 바탈이 하나이기 때문에 그로만 하면 거의 무한한 능력이 나올 수 있다.

그것을 믿어야 한다. 문명인의 잘못은 문명을 믿는 나머지 근본 정신을 잊는 일이다. (1961)

 

그가 왜 도둑질을 하게 되었을까 좀더 깊이 동정하는 눈으로 본다면, 내가 필요 이상으로 입은 것이 곧 그의 도둑질의 원인임을 알 것이요, 그러면 도둑은 그가 아니라 나임을 알 것이요, 이 내가 도둑질하잔 맘 아닌데 왜 하게 됐을까 생각을 한다면 고기의 물처럼 내가 믿고 사는 이 사회제도야말로 나를 그르쳤구나 하는 것을 깨달을 것이다. 그러면 이 괴물을 그냥 둘 수 없다. 바울이 말한 '공중에 권세 잡은 자'란 그것이다. 모든 정신적 생명의 사도의 대적은 고정하는 제도다. (1959)

 

갈대가 피리가 되려면 토막으로 잘려야 하고 속에 깉는 것 없이 뚫려야 한다. 그래야만 그리로 하늘바람이 거침없이 나갈 수 있고 그러면 땅에 선 갈대로서는 도저히 할 수 없는 거룩한 하늘음악을 발할 수가 있다. 산 갈대로는 아무리 애를 써도 하늘소리를 낼 수가 없다. 비록 하늘바람이 내려와 흔들어도 그것은 어지러움의 소리요 미침의 부르짖음이지, 처량한 음악일 수가 없다. 하늘소리를 내려면 반드시 꺾여야 하고 뚫려야 한다. 죽은 후에야 된단 말이다. (1961)

 

선생의 글은 추상적인 내용이 아니라 현실적이고 실천적이다. 실천이 없는 이론은 죽은 것이기 때문이다. 생각을 불러내고 행동해야만 세상을 움직이는 힘이 생긴다. '살림살이'라는 글에서는 구체적으로 12가지 실천 항목을 제시하고 있다.

 

1. 늘 하늘을 우러러보자

2. 몸은 언제가 꼿꼿이 가지자

3. 일찍 일어나 하루 살림 준비를 하자

4. 내 몸 거둠은 내가 하자

5. 먹고 입음을 간단히 하자

6. 술 담배를 하지 말자

7. 하루 한 번 땀을 흘리자

8. 날마다 글읽기를 잊지 말자

9. 때때로 산과 바다에 가자

10. 산 물건을 죽이지 말자

11. 빚을 지지 말자

12. 시골을 지키자

 

인생은 참을 찾는 거다. 에덴 동산 첫 저녁 서늘한 바람에 무화과 잎사귀가 흔들리기 시작한 때부터 오늘까지, 쌀은 채 안치기도 전에 솥뚜껑부터 열 번 스무 번 열어보는 잔나비같이, 속 바쁜 인생이 아니 가본 곳이 없고, 아니 건드려본 것이 없고, 아니 생각해본 길이 없고, 아니 해본 짓이 없는 오늘까지, "인생이 뭐냐?" 하고 물음한 사람이 천천만이요 만만만일까? 그러나 한 마디로 하면, 인생은 참을 찾는 거다. (1959)

 

참이 무엇인가? 길이 참이다. 기르는 것이 참이다. 갈 길 있는 것 아니다. 감이 길이다. 도(道)함이 도다. 길이 하늘에 있는 것 아니요, 땅에 있는 것 아니요, 내게 있는 것 아니다. 길이 길에 있다. 있는 것이 길이다. 그러나 또 길은 아무 데도 없다. 길을 내는 것이 삶이요, 참이다.(1959)

 

사랑하는 벗들아, 솔로몬의 황후가 돼봤으면 하는 것이 너희 꿈의 절정이지. 너희 사는 이 집도 자랑의 궁전이지. 가엾어라! 이 속에서 꾸미는 너희 단장과 다듬는 너희 목청이 아름다움이 될는지 모르지만 대우주의 전당에 내다놓을 때 그것이 무엇이냐? 네가 참말 아름답고 싶으냐? 아름답고 싶거든 산 위에 서야 하고, 바다 앞에 서야 하고, 하늘가에 서야 한다. 현실의 평지를 높이 떠난 이상의 높은 봉에 설 때, 그리하여 햇빛이 강한 광선으로 너희 두 뺨에 키스할 때, 그때는 너희가 분을 발랐거나 연지를 찍었거나 못 찍었거나 그것이 문제도 아니 된다. (1949)

 

내 믿음엔 천당 지옥이 없다. 천당과 지옥이 있지 않다는 말이 아니다. 그거야 내가 알 수도 없고 알 바도 아니다. 내 믿음엔 천당 지옥이 있거나 말거나 관계가 없다는 말뿐이다. 우리 아버지는 천당의 재판장도 아니요, 지옥의 형무소장도 아니다. 이제 내 정도도 복이 좋아서 믿는 것도, 벌이 무서워 하나님을 공경하는 것도 아닌 데쯤은 왔다. 나는 1세기 사람보다는 좀 자랐다. 그리고 나는 오늘날 사람의 하나지 누구보다 앞선 것은 아니다.

 

낡은 역사책을 모두 불살라 버려라, 새 역사를 쓰자. 그것 내놓고 사료가 어디 있느냐, 걱정마라. 말하는 3천만 산 역사가 있지 않나. 이 나라의 지도자라 하고 다스린다는 놈들이 돈에 팔리고 권세에 팔려 역사를 삐뚤어지게 쓰고 있는 동안 무식한 민중은 무식하기 때문에 붓과 먹으로 쓰지 않고 피와 땀으로 쓴 역사를 석실(石室) 아닌 육실(肉室)에, 골실에, 그래탑의 지성소(至聖所)에 감추어 지켜왔다. 문헌의 역사에서는 독립이 없어졌어도 여기는 독립한 민족이 있다. 돌에 아로새겼던 문화는 망가졌어도 여기는 유전 속에 깊이 묻혀 있어 캐내는 날을 기다리는 산 문화가 있다. 이 자리에 서서, 막막 우주에 여기밖에 없는 이 자리에 서서 새 역사를 쓰고 짓자. 지음으로 쓰고 씀으로 짓자. (1966)

 

세상에 우스운 것은 5.16입니다. 한줌 되는 군인이 국민 앞에 한 것도 아무 것도 없고 내논 것도 아무 것도 없이 다만 손에 든 칼자루를 믿고 일어나서 하루아침에 정권을 뺏고 갖은 부조리와 횡포와 거짓을 행해가며 6년도 7년도 그대로 해먹게 되니 그런 넌센스가 어디 있습니까. 생각해볼수록 알 수 없는 것은 이것입니다. 어느 모로 보아도 취할 점이 없는데, 누구더러 말해도 다 악한 자들이라 하는데, 그것이 막을 수 없는 세력으로 자라가니 웬일입니까. (1967)

 

선거란 곧 하늘 말씀에 대한 민중의 대답이다. 하나님이 혹은 도리(道理)가 이 나라의 다음 대통령으로 뽑아놓은 이는 당연히 있다. 선거는 이 민중이 능히 그것을 알아맞히나 못 맞히나 보자는 것이다. 그러므로 모든 선거자의 마음은 하늘 뜻에 맞는 이, 즉 공정한 정성의 사람을 뽑아야 한다는데 집중되어야 한다. 그래서 과연 하늘의 뜻과 맞게(도리에서 볼 때 옳게) 뽑으면 우리나라에는 복이 있을 것이다. 허나 만일 민중의 맘이 밝지 못해 유혹이나 위협에 넘어가서 옳지 못하게 뽑으면 그때는 하늘의 무서운 질문을 받을 것이다. (1959)

 

우리는 우상적인 국가주의를 초월해야 한다. 세계의 모든 씨알을 믿기만 한다면 간악하고 잔인한, 우리로 하여금 아파도 아프다는 소리를 못하고 죽어도 죽노라는 비명도 내지 못하게 하던, 그 큰 우상은 봄이 올 때 눈사람처럼 스러질 것이다. 칼을 쓸 필요도 없다. 우리 스스로를 믿으면 된다. 태양이 따로 오는 것이 아니다. 우리 스스로를 믿고 서로 사랑하면 그것이 곧 우상을 녹여 없어지게 하는 태양이다. 이 말을 공상이라 해서는 아니 된다. 의심이 곧 우상을 불러들이는 악마의 겨울바람이다. 그러기에 냉전이라 하지 않던가? 스스로를 믿지 못하는 공포의 찬바람이 우리 모두를 얼어죽게 만들었던 것이다. 서로서로 믿지 못하고 미워했을 때 우리 혼은 모두 얼어 국가주의라는 우상의 종이 되어 서로서로를 욕하고 미워하여 서로서로를 시체로 만들었다. 생명은 죽는 법이 절대 없다. 우리 스스로가 생명의 자녀임을 잊어버리고 악마 같은 국가주의의 거짓 선전에 속아서는 안 된다. (1986)

 

앞으로는 남을 지배하는 큰 나라는 없어질 것이고, 서로 취미를 같이 하는 조그만 공동체가 늘어갈 것인데, 우리가 본때를 보여주어야지. 잘못의 근본은 인간의 교만에 있으니 작은 것이 아름답고, 낮은 것이 좋고, 다툼이 없고, 강하기보다 부드러워짐이 이기는 길임을 실제로 모범을 보여주는 것이 우리 살림이 돼야지. (1986)

 

소가 만일 제 코에 꿰인 것이 무엇이요 제 목에 걸린 줄이 무엇이요 제 뒤에 섰는 사람이 무엇을 하는지를 알았을진대 도살장으로 들어가지는 않았을 것이다. 사람이 집을 이루고 직업을 갖고 자녀를 낳고 교육을 하나 그런 줄만 알고 그 교육이 무엇을 목적하는 교육이며 그 정치가 어떤 노선을 걷는 것임을 모르면 제 발로 걸어 죽을 데로 가는 소와 무엇이 다른가. 지배자가 시키는 대로 국민의 의무를 다하는 것이 참 국민이 아니라, 그것이 도대체 무엇을 뜻하고 어디를 지향하는 것임을 알아야만 참 국민이 될 수 있다. (1966)

 

이승만 정권만이겠습니까. 정치란 다 그런 것입니다. 말은 다 좋게 나랏일이지만 정치하는 사람들이 결코 나라 생각 아니 합니다. 정치하는 못된 사람들이 나랏일 해주려니 믿었다가는 큰일납니다. 나라 잃거나 망합니다. 말이야 물론 공을 내세우지만, 현란한 꽃일수록 씨가 없듯이 그것은 실속 없는 속이는 말뿐이고, 속을 노골적으로 말한다면 힘드는 일은 아니하고 남이 수고한 결과를 뺏아 거들거리고 먹고 마시고 입고 놀고 권세를 마음껏 휘둘러보자는 것이 그 목적입니다. (1968)

 

통일은, 배후에 어떤 세력이 있어 끌려서 대진을 하게 됐더라도, 서로 바라보는 순간, 너와 내가 그럴 사이가 아니었지, 네 손에 차라리 내가 죽더라도 내가 어찌 너를 죽일 수야 있겠느냐 하는 마음이 다같이 들지 않는 한 있을 수 없습니다. 이북에서 쳐내로온 자나 쳐들어간 자나 서로 제국주의에 또는 공산주의에 복수한답시고 살인 강간을 맘대로 하는 그것들이야말로 나라의 도둑입니다. (19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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