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읽는기쁨

무당벌레 / 김용택

샌. 2012. 12. 16. 11:30

아랫도리를 발가벗은 아가가

마당을 돌아다니다가 쪼그려 앉더니

뒤집어진 무당벌레를 손가락으로 툭 건듭니다.

무당벌레가 뒤집어지더니 날개를 활짝 펴고 날아갑니다.

아가가 우우우우 소리를 지르며 날아가는

무당벌레를 가리키다가

자기 손가락을 찬찬히 들여다봅니다.

 

- 무당벌레 / 김용택

 

 

어린아이는 움직이는 것은 살아 있고, 움직이지 않는 것은 죽었다고 여긴다. 하늘의 구름과 내리는 눈은 살아있지만, 정원의 꽃나무는 죽은 것이다. 뒤집어져 움직이지 못하던 무당벌레가 날개를 펴고 날아가는 것은 죽은 것이 살아나는 것처럼 놀라운 일이다. 더구나 자기 손가락이 닿으니 그렇게 되었다. 모든 것이 경이 그 자체다.

 

어린아이는 사물 사이의 인과관계를 과학적으로 파악하지 못한다. 우리는 그것을 무지하다고 부를 수도 있고, 순수하다고 말할 수도 있다. 무지에서 공포가 생긴다고 말하지만 사실은 그 반대다. 공포는 잘못된 지식이 만든다. 어린아이의 눈에 세계는 마법이고 마술이다. 동심이야말로 신(神)의 마음에 가깝다.

 

워즈워드는 아이는 어른의 아버지라고 했다. 장자도 갓 태어난 송아지의 눈으로 세상을 보라고 말했다. 어린이가 되어야 하느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다는 예수님 말씀도 있다. 핵심은 동심이라는 원점으로 돌아가는 데 있는지 모른다. '놀란 아가'의 마음을 다시 찾기는 어렵겠지만 그런 염원이나마 가지고 살아갈 수 있어도 다행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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