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살이의꿈

미친 나라

샌. 2012. 12. 18. 07:30

어느 중견 회사에 다니는 조카로부터 회사 얘기를 가끔 듣는다. 조카를 보면 우리나라의 회사원 생활이 얼마나 고달픈지를 실감한다. 거의 매일 야근이어서 밤 10시 전에 퇴근하는 날이 거의 없고, 심지어는 밀린 일을 처리하느라 휴일에도 출근한다. 내가 보기에는 거의 살인적인 근무 환경이다. 마음에 들지 않지만 먹고살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다닌다고 본인도 말한다. 젊어서 고생은 사서도 한다지만 이건 아니다 싶다.

 

회사 동료들도 속으로는 불만을 품고 있지만 입 밖에 내지는 못한다고 한다. 그랬다가는 언제 잘릴지 모르기 때문이다. 내가 듣는 범위에서 이 회사 사원들은 거의 현대판 노예에 가깝다. 법에 규정된 근로 조건도 지키지 않는 것 같다. 특수한 몇몇 회사를 제외하곤 우리나라 대부분의 근무 여건이 비슷할 것이다. 일자리를 구하기도 어렵지만, 그 일자리마저 정상이 아니다. 왜 젊은이들이 공무원을 선호하는지 알 것 같다.

 

회사의 지시에 아랑곳없이 자유롭게 근무하는 사람이 하나 있다고 한다. 부인이 호주 사람인데 한국은 '미친 나라'라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더란다. 가정생활을 못 할 정도로 회사 일을 시키는 행태를 외국인 부인은 이해할 수 없었던 것이다. 회사에서 특별 대우를 받으며 자유롭게 출퇴근하는 남편의 평가가 이런데 다른 사람은 어떠할지 짐작할 수 있다.

 

조카를 보면 분명 업무 과다인데 회사에서는 일 할 사람을 더 뽑지 않는다. 이윤이 목적인 회사에서는 최대한 인건비를 절약해야 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직원을 착취 수준까지 부려먹으면서 일의 능률을 올릴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듣기로 그 회사는 회식이나 엉뚱한 데로는 돈이 줄줄 새나간다고 한다. 그 돈으로 직원을 더 고용하고 근무 환경을 개선하면 훨씬 더 효율이 오를 것 같다.

 

이번 대선 후보 중 한 사람이 밤 10시까지 초등학교에서 아이들을 맡아주겠다는 공약을 했다. 이 공약을 듣는 순간 너무 화가 났다. 아이는 맡아줄 테니 부부는 밤늦게까지 열심히 야근하라는 소리로 들렸다. 부모와 아이가 함께 지내는 시간은 도대체 언제 가지란 말인가? 저녁은 가족이 함께 식사하는 세상을 만드는 정책을 제시하는 게 대통령이 해야 할 일이 아니겠는가?

 

회사의 야근 금지 법안이라도 만들었으면 좋겠다. 퇴근 시간을 지키고 직원은 가정으로 돌려보내자. 야근할 정도로 일이 많으면 사람을 더 뽑으면 된다. 아마 많은 일자리가 늘어날 테니 작금의 일자리 부족을 걱정할 필요도 없다. 정책은 사람 중심의 관점에서 만들어야 한다. 시각을 바꾸면 길이 나온다. 그렇지 못하니 자살률 세계 1위고, 모든 국민이 우울증에 걸릴 정도다. 중요한 것은 돈이 아니라 삶의 질이다. 가족의 삶과 행복을 찾아주는 것이다.

 

엄마 아빠의 따뜻한 품을 모르고 자라는 아이들이 늘어나고 있다. 강남에서는 소아정신과가 성업중이라 한다. 아이들에게서 가정의 사랑을 빼앗아 놓고 대한민국의 미래는 자신이 책임지겠다고 정치인은 큰소리친다. 어불성설이다. 무엇이 소중하고 지켜야 할 가치인지를 잊고 있으니 '미친 나라'라는 소리를 듣는다. 스트레스를 술로 푸니 도시의 밤거리는 늘 불야성이다. 우리도 좀 여유 있고 사람답게 살 수는 없을까? 이젠 망령에서 벗어날 때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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