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살이의꿈

대동사회

샌. 2012. 12. 25. 12:17

<예기>(禮記)에 이런 내용이 나온다. 옛날 공자께서 신농씨 제사에 참석하시고 나서 성문 위에서 쉬다가 서글프게 탄식하셨다. 자유가 곁에 있다가 물었다. "선생님께서는 왜 탄식하십니까?" 공자는 이렇게 대답했다.

 

"대도(大道)가 행해졌을 때는 천하가 공공의 것이었고 어질고 능력 있는 자를 뽑아서 신의를 가르치고 화목을 닦게 하니 사람들은 그 부모만을 홀로 부모라 여기지 않았고, 그 자식만을 자식으로 여기지 않았다. 늙은이는 편안하게 일생을 마치게 했으며, 젊은이는 다 할 일이 있었으며, 어린이는 잘 자라날 수 있었으며, 과부 홀아비 병든 자를 불쌍히 여겨서 다 봉양했다. 남자는 직업이 있고 여자는 시집갈 자리가 있었으며, 재물을 땅에 버리는 것을 싫어했지만 반드시 자기를 위해 쌓아두지는 않았다. 몸소 일하지 않는 것을 미워했지만 반드시 자기만을 위해 일하지는 않았다. 이런 까닭에 간사한 꾀가 막혀서 일어나지 못했고, 도둑이 훔치거나 도적들이 난을 일으키지 못했다. 그래서 바깥 문을 여닫지 않았으니 이를 일러 대동(大同)이라고 한다."

 

大道之行也 天下爲公 選賢與能 講信脩 故人不獨親其親 不獨子其子 使老有所終 壯有所用 幼有所長 矜寡孤獨廢疾者 皆有所養 男有分 女有歸 貨惡其奔於地也 不必藏於己 力惡其不出於身也 不必爲己 是故謀閉而不興 盜竊亂賊而不作 故外戶而不閉 是謂大同

 

공자가 생각하는 이상사회가 잘 그려져 있다. 공자는 이를 대동(大同)이라고 불렀다. 대동사회에서는 내 자식만이 자식이 아니다. 어린이는 잘 자라나고 늙은이는 편안히 일생을 마친다. 과부, 홀아비, 병든 자는 불쌍히 여겨서 함께 봉양한다. 간사한 꾀를 부리지 않고 재물을 쌓아두지 않는다. 그래서 도적이 없고 바깥 문을 잠그지 않아도 된다. 상상만 해도 감탄사가 절로 나오는 아름다운 공동체다.

 

대동(大同)이란 말 그대로 '크게 하나 됨'이라는 뜻이다. 요사이 용어로 하면 보편적 복지가 실천되고 있는 평등 사회다. 사람들은 자기만을 위해 일하지 않고, 재물은 자기를 위해 쌓아두지도 않는다. 신분 차별이 없는 무계급사회면서 경제적으로는 공산주의에 가깝다. 대동사회는 유가(儒家)의 이상향이다. 만약 공자가 대한민국에 온다면 비인간적인 자본주의를 신랄하게 비판할 것이다.

 

대동은 균분(均分)이다. 마태오복음 20장에도 비슷한 의미의 비유가 있다. 포도원에서 일한 일꾼의 품삯을 온종일 일한 사람이나 늦게 와서 한 시간 일한 사람이나 똑같이 준 주인이 있었다. 불평하는 사람에게 주인은 이렇게 말한다. "당신의 품삯이나 가지고 가시오. 나는 이 맨 나중에 온 사람에게도 당신과 같이 주고 싶습니다." 여기에 나오는 '맨 나중에 온 사람'은 사회에서 소외된 약자로 해석된다.

 

대동사회란 능력과 신분을 넘어 모두가 행복한 공동체다. 기독교적 개념으로는 하느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사회다. 경쟁보다는 협동과 배려가 중심 가치가 되는 사회다. 대동사회의 꿈을 가진 공자는 성리학에 갇힌 고리타분한 공자의 모습이 아니다. 공자가 지배층에게 한 유명한 말이 <논어>에 나온다. "부족함을 걱정하지 말고 고르지 못함을 걱정하라[不患寡而患不均]".

 

세상이 개인이나 일부 특수 집단의 것이 아니라 구성원 모두의 것이라는 사상이 '천하위공(天下爲公)'이라는 말에 잘 담겨있다. 반면에 지금 세상은 자기와 가족의 이익을 우선 생각한다[天下爲家]. 오로지 자기를 위해서 돈을 번다[貨力爲己]. 대도(大道)가 없어진 이런 세상을 공자는 '소강(小康)'이라 불렀다.

 

<예기>에서 공자는 소강사회를 이렇게 묘사한다.

 

"지금의 세상은 대도는 이미 없어지고, 천하를 사사로운 집으로 생각하며, 각각 자기의 어버이만을 친애하며, 자기의 아들만을 자애한다. 재화와 인력은 자기만을 위하여 바친다. 천자와 제후는 세습하는 것을 예로 여기며, 성곽과 구지를 견고하게 한다. 예의를 벼리로 삼고 그것으로 임금과 신하의 분수를 바로잡으며, 부자 사이를 돈독하게 하고, 형제를 화목하게 하며, 부부 사이를 화합하게 한다. 제도를 설정하여 농토와 동네를 세우며, 용맹함과 지혜있음을 어질다고 하고, 공은 자신만을 위하여 한다. 그런 까닭에 간사한 꾀가 이로서 쓰이고 생기니 전쟁이 일어나는 연유다. 이러한 세상을 소강이라고 한다."

 

今大道旣隱 天下爲家 各親其親 各子其子 貨力爲己 大人世及以爲禮 城郭溝池以爲固 禮義以爲紀 以正君臣 以篤父子 以睦兄弟 以和夫婦 以設制度 以立田里 以賢勇知 以功爲己 故謨用是作而兵由此起 是謂小康

 

앞으로 우리 사회는 소강(小康)에서 대동(大同)으로 나아가야 한다. 그것이 우리가 만들어가야 할 새 세상이다. 재물보다는 사람이 먼저인 세상이 되어야 한다. 지금 전 세계를 휩쓰는 신자유주의 경제 시스템은 분명 이런 역사의 흐름에 반하는 것이다. 이번 대선에서는 두 메이저 정당이 아니라 이정희 후보나 여타 군소 후보의 공약이 공자가 꿈꾼 대동사회의 모습에 가깝다. 기득권자들이 세상의 변화를 바랄 리가 없다. 그러나 소수의 목소리는 대다수 국민의 외면을 받고 있다. 야당 후보가 진 것보다 어쩌면 그게 더 안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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