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속일상

담양 정자와 창평 슬로시티

샌. 2013. 1. 12. 08:33

무등산에 오르러 광주에 가는 길에 담양에 들러 면앙정, 송강정, 식영정의 세 정자와 창평 슬로시티를 찾다.

  

 

면앙정.

 

담양군 봉산면 제월리에 있다. 중종 28년(1533), 관직에서 물러난 송순(宋純, 1493~1582)이 고향인 이곳에 면앙정을 짓고 학문을 토론하며 후학 양성에 힘썼던 곳이다.

 

 

송강정(松江亭).

 

담양군 고서면 원강리에 있다. 선조 17년(1584), 대사헌으로 있던 정철(鄭澈, 1536~1593)은 당쟁의 와중에 이곳에 물러와 4년동안 지냈다. 원 이름은 죽록정(竹綠亭)이다. '사미인곡(思美人曲)' '속미인곡(續美人曲)을 여기서 지었다.

 

고등학생일 때 '사미인곡'을 배우며 여성적이며 섬세한 가사를 쓰는 정철의 이미지가 후에 그의 행적을 알고난 뒤에는 많이 혼돈스러워졌다. 기축옥사에서 반대파를 무자비하게 숙청한 우두머리였기 때문이다. '사미인곡' 가사도 그가 다시 선조의 신임을 받아 권력을 쥘 욕망으로 읽을 수도 있지 않을까?

 

'.... 하루도 열두 달, 한달도 서른 날, 님을 잠시라도 생각하지 않으려고 해도

이 시름을 잊자 하니 마음에 맺혀 있어 뼈속까지 사무쳤으니

편작 같은 명의가 열 명 온다 하더라도 이 병을 어찌하리

아아, 내 병이야 님의 탓이로다

차라리 죽어서 호랑나비가 되리라

꽃나무 가지마다 간 곳마다 앉았다가

향 묻은 날개로 님의 옷에 옮으리라

님이야 날인 줄 모르셔도 내 님 좇으려 하노라'

 

 

 

식영정(息影亭).

 

담양군 남면 지곡리에 있다. 명종 15년(1560), 김성원(金成遠)이 장인인 임억령(林億齡)을 위해 지은 정자다. 앞에 광주호가 펼쳐진 풍광이 뛰어나다. 세 정자 모두 비슷한 시기에 세워진 우리나라 가사문학의 무대가 된 곳이다.

 

'그림자가 쉰다'는 뜻의 '식영(息影)'이라는 이름은 <장자>에서 유래한다. '어부'편에 이런 내용이 나온다.

 

자기 그림자가 두렵고 발자국이 싫어서

떨쳐버리려고 달리는 자가 있었다.

발을 들어 올리는 것이 더욱 잦아질수록

발자국은 더욱 많아지고

아무리 빨리 달려도

그림자는 몸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그는 아직도 느리다고 생각하여

더욱 빨리 달리며 쉬지 않았다.

드디어 힘이 빠져 결국 죽고 말았다.

그 사람은 그늘에 처하면 그림자도 쉬고

처함이 고요해지면 발자국도 그친다는 것을 알지 못한 것이다.

어리석음이 얼마나 심한 것인가?

 

人有畏影惡迹

而去之走者

擧足愈數

而迹愈多

走愈疾

而影不離身

自以爲尙遲

疾走不休

絶力而死

不知處陰以休影

處靜以息迹

愚亦甚矣

 

 

 

 

 

슬로시티로 지정된 담양군 창평(昌平) 삼지내마을은 백제 시대 때 만들어진 유서 깊은 마을이다. 고가(古家)와 돌담이 정겨운 동네다. 눈 덮인 논 너머로 보이는 건물은 옛 창평동헌에 있던 남극루(南極樓)다.

 

슬로시티(slow city) 운동은 사람답게 사는 세상을 염원하며 1999년에 이탈리아에서 시작되었다. 슬로시티 철학은 성장에서 성숙, 양에서 질, 속도에서 깊이와 품위를 존중하는 것이라고 한다. 느림(Slow), 작음(Small), 지속성(Sustainable)에 중점을 두는 철학이다.

 

슬로시티 홈페이지에 들어가 보니 당시의 선언문이 이렇게 나와 있다.

 

시간의 의미를 되찾은

상상력을 가진 사람들

여기 생명이 살아 숨쉬는 고장

 

마당, 극장, 공방, 다방, 식당

영혼이 깃든 풍요로운 장소들

이곳에 온화한 풍경과 숙련된 장인들이 사는 고장

 

자비로운 계절의 변화가 주는 아름다움

향토 음식의 맛과 영양

의식의 자발성을 존경하고

여전히 느림을 알며 전통을 존경하는 고장....

 

현재 25개국에서 150개 도시와 마을이 가입되어 있다. 그중에서 한국은 10곳으로 아시아 최고다. 가장 바쁘게 사는 나라에서 슬로시티 역시 제일 많다. 슬로시티 철학을 존중하며 살아야지, 슬로시티 마을만 많이 지정하면 어쩌겠다는 건지 모르겠다.

 

 

광주로 들어가는 길에 국립 5.18 묘지에 들러 참배하다. 스러져간 넋들 앞에서 가슴이 먹먹해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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