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위의단상

한 갑자가 지나다

샌. 2013. 2. 12. 10:41

한 갑자가 돌았다. 60년 전 계사년(癸巳年)에 태어났는데 다시 계사년이 찾아왔다. 12와 60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시간과 관계된 숫자다. 해를 나타내는 12개의 지(支)가 있고, 일 년은 12달로 나눈다. 밤낮도 12시간으로 되어 있다. 또, 시간이나 분은 60등분을 한다. 이런 것이 순환 구조를 이루면서 60년이라는 큰 수레바퀴를 만든다.


60년 인생의 의미가 많이 퇴색된 건 사실이다. 축하 인사도 없고 회갑 잔치도 사라졌다. 수명이 늘다 보니 예전 60이 지금은 80 언저리쯤 될 것 같다. 인생칠십고래희(人生七十古來稀)도 옛말이 되었다. 이젠 대부분이 고희(古稀)를 넘기고, 100세 넘은 분을 만나는 것도 드물지 않다. 회갑을 언급하는 자체가 쑥스럽다.


그래도 60은 인생의 한 매듭으로 충분히 의미 있는 숫자다. 힌두교에서는 이 시기가 임서기(林棲期)로 가정과 일에서 떠나 숲에서 정진하는 때다. 산속 움막에서 지내며 고독과 명상을 통해 삶의 의미를 사색한다. 60이라는 나이가 갖는 뜻을 잘 함축하고 있다고 본다. 현대에 들어서도 임서기의 본질적 의미는 마찬가지가 아닐까. 생계형 일의 굴레로부터 어느 정도 벗어날 수 있는 나이가 이즈음이다. 내적 성장의 전기가 되는 때가 60이다.


인생을 전반기와 후반기로 나눈다면 60세 부근을 경계로 할 수 있을 것 같다. '인생은 60부터'라거나 '인생 2모작'이라는 말도 마찬가지다. 후반기 인생의 방향을 제대로 잡기 위해서는 전반기를 돌아보는 과정이 필요하다. 그게 없다면 발전도 기대하기 어렵다. 개인적으로는 한 갑자의 내 인생을 회고해 보는 '60 자술(自述)'을 써 보고 싶었는데 어영부영하다가 놓쳐 버렸다. 뒤로 미룰 수밖에 없게 생겼다.


60년을 살아봐도 사람살이가 막막하고 막연하다. 인생이란 주어진 생을 그저 사는 것,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것 같다. 거기에 의미를 부여하고 채색을 하면 할수록 더 피곤해진다. 젊은 시절에는 자청해서 무거운 짐을 지고 얼마나 힘들어했던가. 지금부터는 내리막길이고 어디에선가 죽음이 기다리고 있다. 그 친구가 언제 찾아올지는 아무도 모른다. 당장 내일이라고 해도 아쉬울 건 없다. 자식들 다 짝 찾아 독립시켰으니 마음이 한결 가볍다. 앞으로 이루고 싶거나 하고 싶은 일도 별로 없다. 잘 지냈다 간다, 라는 자족 하나면 넉넉하다.


사람은 생긴 대로 사는 게 제일 편하다. 나는 정월에 태어났다. 이 시기에 뱀은 겨울잠을 잔다. 유독 잠이 많고 비활동적인 건 출생월과도 관련이 있는지 모른다. 다른 사람 닮겠다고 설쳐본들 어쩌겠는가. 그저 포근한 땅속에서 웅크리고 단꿈이나 꾸는 게 상책이다. 나는 아무래도 '고독한 몽상가' 체질이다.


그래도 인생 후반전에서 바람이 없는 건 아니다. 제일이, 내 이기성을 극복하는 문제다. 설날 첫 꿈도 그런 걸 꾸었다. '나'를 너무 내세우다가 많은 사람 앞에서 창피를 당했다. 사람들은 느긋한데 혼자만 앙탈을 부린 것이다. 할 것 다 했지만 결국은 머쓱하고 불편해졌다. '함께'를 저버린 '홀로'는 없다. '나'를 죽이지 않고 내가 행복할 수 없다. 자아의 감옥에서 해방되는 게 자유인 것이다. 이것은 내가 죽을 때까지 부딪쳐야 할 과제다.


이제 두 번째 수레바퀴가 돌기 시작했다. 나는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 살수록 온통 모르는 것 투성이다. 물결에 모든 걸 맡기고 그저 유유자적할밖에. 물 흐르는 대로, 바람 부는 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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