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속일상

달팽이의 귀환

샌. 2013. 4. 21. 16:11

 

작년 가을에 고향에서 올라올 때 어머니가 여러 종류의 채소를 싸주셨다. 그 더미 속에 묻혀 달팽이 한 마리가 따라온 걸 집에 와서야 발견했다. 줄을 잘못 섰다가 졸지에 정든 땅과 생이별한 신세가 된 것이다. 다시 돌려보낼 길은 없고 집에서 한 번 길러보자 하고 화분에 배춧잎을 깔아 새 터를 마련해 주었다. 그런데 웬걸, 다음 날 아침에 보니 달팽이가 행방불명되고 말았다. 온 베란다를 뒤졌지만 도저히 찾지 못했다. 새 환경이 낯설었는지 어디로 숨어버린 것 같았다. 그 뒤로 며칠 동안 수색했지만 도저히 찾을 수 없었다. 그렇게 달팽이는 잊혀졌다.

 

사라졌던 달팽이가 오늘 드디어 모습을 드러냈다. 화분에 붙어 있는 모습을 우연히 발견한 것이다. 여섯 달 만이었다. 살아 있으리라고는 생각도 안 했는데, 돌아온 탕자라도 이만큼 반가울까, 나도 모르게 환호성을 질렀다. 추운 겨울을 견뎌내고 저도 따스한 봄 햇살 기운에 밖으로 나온 것 같다. 반갑고 고맙다, 달팽이야!

 

껍질에는 검불과 흙알갱이가 지저분하게 묻어 있다. 그동안 흙에 들어가 있었던 모양이다. 아무것도 먹지 않고 긴 겨울을 어떻게 버틸 수 있었을까? 베란다에는 파를 비롯한 초록잎을 가진 식물이 있었으니 그걸 먹이로 했는지도 모르겠다. 어찌 되었든 살아있는 게 고맙다.

 

화분 위에 양배춧잎을 올려 주었다. 알아서 먹어줬으면 좋겠다. 지금까지처럼 제 혼자 마음대로 돌아다니도록 손은 대지 않으려 한다. 언젠가 때가 되면 밖으로 내보내 줘야겠다. 옆 텃밭에 상추랑 채소를 심게 되면 거기가 새 보금자리로 적당할 것 같다. 그동안은 여기서 안심하고 지내거라. 달팽이야, 파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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