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고본느낌

나는 고발한다

샌. 2013. 7. 5. 10:03

보수와 진보의 대결, 인종 차별, 국가 폭력, 언론을 통한 여론 조작 등이 종합된 최초의 현대적 사건이 1894년부터 1906년까지 12년 동안 진행된 프랑스의 드레퓌스 사건이다.


1894년 9월 독일 간첩의 누명을 쓰고 유태인 드레퓌스 대위가 구속되었다. 당시 프랑스는 독일에 대한 적대감과 민족주의, 반유태주의가 기승을 부릴 때였다. 군사법원은 간첩죄로 군적 박탈과 종신 유배를 선고했고, 드레퓌스는 아프리카의 외딴 섬으로 끌려갔다. 참모본부 정보국에서 일하던 피카르 중령이 드레퓌스 사건의 서류를 보다가 스파이 글씨가 드레퓌스가 아닌 보병 대대장 에스테라지 소령의 것임을 알아내고 상관에게 알렸다. 그러나 참모본부와 언론은 오히려 에스테라지를 변호했고 피카르는 좌천을 시켰다. 진실을 알게 된 에밀 졸라는 1898년 1월 '로로르'지에 <나는 고발한다>라는 글을 발표했고 신문은 30만 부를 찍을 정도로 파리를 뒤흔들었다. 이후 청년 학생들과 진보적 지식인들이 결집하면서 1899년 8월에 드레퓌스 사건 재심이 시작되었다. 그 과정 동안 에밀 졸라는 국가 배신자의 상징이 되고 징역형을 선고받아 영국으로 망명하기까지 했다. 그러다가 1902년 의문의 가스중독으로 사망했다. 이 사건은 1906년에 드레퓌스가 무죄를 받고 완전히 복권됨으로써 마무리 되었다.


드레퓌스 사건의 중심에 에밀 졸라가 있다. 그는 <나는 고발한다>라는 도발적인 제목의 글로 국가 권력에 대항하고 당시 여론에 큰 영향을 미쳤다. 진실을 말함으로써 졸라는 명예훼손죄로 기소되었고, 형을 선고받았고, 훈장을 박탈당했고, 주류 언론과 대중들로부터는 조국의 배신자라는 모욕도 당했다. 명예를 잃었고 경제적 어려움도 겪었다. 그러나 에밀 졸라의 행동은 불합리한 사회제도와 국가 권력에 맞서 싸우는 프랑스 지식인 사회의 귀한 전통으로 뿌리내렸다. 누구나 알고 있지만 아무도 말하지 않으려는 것을 말한, 진실을 진실이라고 외친 졸라의 용기는 행동하는 지식인의 모범이 되고 있다.


에밀 졸라의 <나는 고발한다>와 다른 여러 팸플릿 글을 읽어 보았다. 에밀 졸라가 분노했던 100년 전 프랑스의 상황이나 지금 한국이나 별반 다르지 않다. 인간이 살아가는 데서는 어디나 어느 때나 부딪히는 문제인지 모른다. 권력자는 자신의 야욕을 위해 불법을 저지르고 진실을 왜곡하려고 한다. 작금의 국정원 선거 개입과 NLL 논란도 같은 연장선상에 있다고 본다. 자유와 민주주의는 결코 그냥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지식인이 가져야 할 역사에 대한 의무와 역할이 무엇인지를 에밀 졸라를 통해 다시금 확인한다. 그는 "나는 한평생 진실의 열정으로 살아왔다."고 말했다. 진실을 알고도 입을 다무는 건 지식인의 직무유기며 범죄 행위다.


"속악한 언론에 기대는 것, 파리의 온갖 사기꾼들에게 도움을 청하는 것, 그리하여 파렴치하게도 사기꾼들이 승리하고 인권과 청렴결백이 패배하게 만드는 것은 범죄 행위입니다. 전 세계에 오판을 강요하려는 사악한 음모에 맞서 프랑스를 자유와 정의의 일등 국가로 만들고자 필사의 노력을 경주하는 사람들을 국가혼란죄로 다스리는 것은 범죄 행위입니다. 여론은 오도하는 것, 여론을 집단 정신 착란으로 몰고 가 사악한 협잡에 이용하는 것은 범죄 행위입니다. 인권의 위대한 자유 국가 프랑스를 병사하게 할 가증스러운 반유태주의의 어둠 속에 몸을 숨긴 채 일반 서민들을 중독시키고, 반동과 배척의 열정을 부추기는 것은 범죄 행위입니다. 증오심을 유발하는데 애국주의를 이용하는 것은 범죄 행위입니다. 끝으로, 인간이 꽃피운 일체의 과학이 진실과 정의가 지배할 내일을 향해 한 걸음 한 걸음 전진하고 있는 이때, 총칼을 현대의 신으로 삼는 것은 범죄 행위입니다."

 

 

'읽고본느낌'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이반 일리치와 나눈 대화  (0) 2013.07.18
백년 동안의 고독  (0) 2013.07.11
함석헌 읽기(13) - 우리 민족의 이상  (0) 2013.06.25
이방인  (0) 2013.06.18
나는 죽을 때까지 재미있게 살고 싶다  (0) 2013.06.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