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고본느낌

함석헌 읽기(13) - 우리 민족의 이상

샌. 2013. 6. 25. 07:44

함석헌 저작집 13권은 여러 군데서 한 강연문이 실려 있다. 선생은 남 앞에 나서지 못하고 부끄러움이 많은 성격이라지만 강연문을 읽어 보면 굉장한 달변가임을 알 수 있다. 원고 없이도 두세 시간은 너끈히 때울 수 있는 분이시다.

 

선생의 글과 말에서는 앞으로 다가올 새 시대를 준비하자는 내용이 많다. 고난과 비극의 역사를 털어내고 새 철학, 새 종교, 새 정치를 해보자는 것이다. 둘로 찢어진 걸 하나로 살리는 철학과 종교, 네 나라 내 나라 구분되지 않는 평화로운 세상을 꿈꾼다.

 

그중에서 1961년에 국토건설 요원에게 한 강연이 눈길을 끈다. 민족 정신의 각성과 의식 혁명을 젊은이들에게 요청하는 긴 내용이다. 강연 마지막은 이런 사자후로 마무리된다. 

 

마지막으로 여러분이 이제부터 할 국토개발에 대하여 한마디 하렵니다. 국토개발을 참으로 하려거든, 참 국토가 뭔지부터 알아야 합니다. 참 나라터가 어디야요? 여러분의 가슴입니다. 삼천리만 아니라 지구 전체를 다 준다 해도 이 국토 하나를 못 지키면 소용이 없고, 반대로 나라 땅을 한때 다 빼앗기는 일이 있더라도, 이 국토만 잃지 않고 잘 지키면, 산과 들로 된 국토는 어디서나 또 얻을 수 있습니다. 나라는 흙 위에 선 것 아니라, 우리 마음 위에 서 있습니다. 이것을 먼저 잘 개발해야 합니다. 이것을 심전(心田) 혹은 심지(心地)라 합니다. 방촌지지(方寸之地)라고도 합니다. 이 밭을 묶어놓고는 저 밭 간단 말이 공연한 말이요, 저 밭을 열심히 가는 것은 나중에 이 밭을 갈기 위한 것입니다. 정말 생산적인 보배는 이 밭에 있기 때문입니다. 이 방촌지지야말로 거룩한 성지입니다. 여기 국조 단군이 계시고, 하나님이 계시고, 여기 미래에 이 땅과 다른 모든 땅의 주인이 될 억만 자손이 있습니다.

개발계획의 첫째는 댐을 막는 것이라 합니다. 그러나 진주 남강에 댐을 막기 전에 여러분 허리에 댐을 막으시오. 기해(氣海) 단전(丹田)의 흘러빠짐을 막으시오. 가난하다 탄식말고. 하늘이 무료로 무진장으로 주는 빗물 막으면 부족 없이 쓸 수 있다 해서 저수지 공사 하지요? 하늘의 비보다도 더 풍부하고 더 놀라운 정신의 근본되는 정력이, 생각없이 하는 향락, 방탕, 싸움 때문에 여러분의 허리에서 흘러빠지고 있습니다. 그것을 먼저 막으시오. 그러면 50만 킬로의 전력이 아니라, 전 세계도 영화(靈化)할 수 있는 영력(靈力)이 나올 것입니다.

강원도, 제주도의 황무지를 개척하기 전에 민심의 황무지부터 뒤집으시오. 길바닥 같아진 마음, 늙은 갈보같이 타락한 심정, 인간성을 잃어버린 그 민중의 가슴을, 사랑의 보습으로 뒤집어 엎으시오. 그리하여 그 숨어 있는 본성을 드러내도록 하십시오.

산에 나무를 심는다지요? 그러기 전에 말라버린 민심에 동정의 물을 주시오. 백성 깎아먹기를 그만두라 하십시오. 시골에 산업도로를 낸다지요? 길을 내기 전에 먼저 사람 사람의 가슴의 막힌 것을 뚫으라 하십시오. 그리하여 돈이 잘 돌아가고, 여론이 잘 통하게 하십시오. 신작로를 내는 것이 급한 것 아니라, 사람들의 가슴 복판에 공의(公義)의 길, 공평(公平)의 궤도를 놓기가 더 급합니다.

광산, 수산을 하여 땅속, 물속에 있는 부를 잡아낼 필요도 있지만, 사람의 가슴속에 묻힌 보배를 캐낼 필요가 더 있습니다. 땅속에 금은보화가 숨어 있듯이, 아직 우리 혼 속에 그보다 더한 보배가 남아 있습니다. 금 같은 그림, 은 같은 시, 진주 같은 음악이 얼마든지 있습니다. 무연탄이 무진장이라지요. 강원도 무연탄보다 더 많은 것은 인심의 무연탄입니다. "석탄 백탄 타는데, 연기나 펄펄 나건만, 요 내 간장 타는데, 연기도 없이 잘 탄다." 천 년 두고 이천 년 두고 연기도 없이 탄 민중의 가슴은, 열어놓으면 시커멓지만 잘 쓰면 열나고 빛날 것입니다. 바다엔 생선이 한이 없다지요? 바다같이 말 아니 하는 민중의 가슴속, 천 길인지 만 길인지 헤아릴 수도 없지만, 그 속에는 펄펄 뛰는 생명이 아직 한이 없이 있습니다. 그것을 잘 잡으면 세계에 제일 가는 부자가 될 것입니다. 이것이 정말 국토개발입니다.

종교가 별것이겠어요? 이것입니다. 철학은 별것이겠어요? 이것입니다. 한 번 더 다시금 다지는 말, 여러분 자신의 가슴속에 찾으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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