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읽는기쁨

병아리 던지기 / 김순일

샌. 2013. 10. 17. 11:37

누우떼가 아프리카 대륙이 꺼지게 달려간다 건기를 맞은 수천 마리 누우떼가 싱싱한 풀밭을 찾아 먼지 자욱한 들판을 지나 강을 건너간다 도룡농 도마뱀 물고기 따위나 잡아먹으며 늘 배가 안차서 걸근거리던 악어들이 때를 만나 강목을 지키고 있다가 모처럼 포식을 하고 비단잠 속으로 들어가려는 참인데 뒤따라 강을 건너던 누우란 놈 겁도 없이 악어의 등때기며 머리통을 밟고 건너가는구나 요녀석 봐라 선잠을 깬 악어가 누우의 허벅지를 물고 짓이겨 댔는데 이거 어쩐 일인가 요단강 건너는 줄 알았던 누우의 허벅지엔 이빨자국 하나 없이 멀쩡하구나 오금아 날 살려라 혼 나간 누우란 놈 허둥지둥 강을 건너갈 때 악어녀석 벙긋벙긋 꽃잠 속으로 드는구나

 

아이들이 놀이를 하고 있다 갓깬 병아리 던지기 놀이를 하고 있다 사층 아파트 창문 밖으로 던지면 누구의 병아리가 먼저 죽을까? 아이들이 병아리 던지기 놀이를 하고 있다 손뼉치고 깔깔대면서

 

- 병아리 던지기 / 김순일

 

 

'동물의 왕국' 같은 프로를 보면 폭력 가득한 정글의 세계가 펼쳐진다. 거친 야성의 생존경쟁에 힘 있는 자만이 살아남는 것처럼 보인다. 화면은 자극적인 장면만 보여준다. 오직 힘 있는 자의 끝없는 포식만 있다면 생태계 먹이 사슬은 금방 파괴되고 말 것이다. 동물의 세계에서는 허기만 면하면 더 이상의 먹이는 거들떠보지도 않는다. 그러니 배불러 꽃잠 자는 악어를 징검다리 타고 누우는 강을 건넌다.

 

생존의 본능에 따라 움직이는 동물을 잔인하다 욕할 수 없다. 우아하게 잡아먹지 못한다고 무자비하다 할 수 없다. 오히려 잔인하고 무자비한 건 인간이다. 서로 많이 차지하려 싸우다가 동족까지 죽이는 건 예사다. 먹이를 두고 다투어도 동물은 남의 것을 뺏어 쌓아두지는 않는다. 그리고 생명을 가지고 장난치는 것 역시 인간밖에 없다. 낚시와 사냥이 취미라고 한다. 여린 생명의 단말마를 손맛이라며 즐긴다. 병아리 던지기 놀이를 하는 아이들을 보면 인간 본성에는 피의 가학성이 있는 것 같다. 성인(聖人)들이 인간 세상에 대해 자비와 사랑을 외친 것도 다 그런 이유 때문인지 모른다.

 

 

'시읽는기쁨' 카테고리의 다른 글

절화행(折花行) / 이규보  (0) 2013.11.06
판쇠의 쓸개 / 정양  (0) 2013.10.30
식사법 / 김경미  (0) 2013.10.12
들리는 소리 / 원재길  (0) 2013.10.01
이제 바퀴를 보면 브레이크 달고 싶다 / 윤재철  (0) 2013.09.25